기획특집

[기획] 연대감을 높이는 공간들
작성일:
2024-02-28
작성자:
박은영
조회수:
348

[기획] 디자인을 통한 건강한 지역사회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40호(202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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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감을 높이는 공간들 

온몸을 잘 도는 혈류가 인체의 건강함을 상징하듯 이웃 간의 원활한 소통과 교류는 지역사회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필요와 요구를 알 때 서로를 지지하고 보호할 수 있기에, 나아가 그것이 연대의식과 지역에 대한 자부심의 양분이 되기에 그렇다. 

그러나 이웃 간의 소통과 교류를 만든다는 건 한 번의 결심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핵개인의 시대’라고 불리는 오늘날 우연히 한 동네에 살게 된 개개인이 모여 삶에 있어 공감대를 찾고 나아가 타인의 돌봄을 자처한다는 건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디자인은 이 높은 마음의 문턱을 넘을 지렛대로 용이하다. 지금부터 지역사회에 개개인이 느끼고 있을 사회적 문제를 재료로 서로 연대감을 쌓도록 이웃들을 초대하는 국내외 공간을 소개한다. 겉으로는 여느 쾌적한 공간, 멀끔한 단지 중 하나처럼 보일지 모르나 이들이 돌보는 문제는 고령화나 지방소멸 같은 고질적 사회 문제부터 최근 몇 년 간 떠오르는 청소년기의 외로움이나 현대인의 무력감까지 어느 하나 가볍지 않다. 

   

2018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기본계획 로드맵. 정부는 ‘100세 시대에 대비한 의료·돌봄·일자리 지원체계 구축’을 강조하며 지역단위 돌봄 체계를 강화하고자 커뮤니티케어 개념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보건복지부


서울시 청소년을 위한 안전한 동굴, 아이엠 그라운드

지역사회 차원에서 청소년의 정신건강이 중요한 논의 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2022년 서울시 청소년 정신건강 통계 자료에 따르면 10명 중 3명이 우울감을 경험했고, 15.8%가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2018년부터 청소년 문제해결 디자인이란 이름 아래 학교 안팎의 사회적 문제를 꼬집고 공공공간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시도 중이다. 일례로 교내 창고를 리모델링해 학생들의 쉼터로 만든 광진구 용마초등학교의 아이엠 그라운드가 있다. 서울시, 지역단체, 서비스디자인 전문기업 크리베이트는 학교폭력의 유형 비중이 신체적 폭력보다는 정서적 폭력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학교, 집이 아닌 제3의 공간으로서 아이엠 그라운드를 만들었다. 부정적 소속감을 해소하고 긍정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소를 이들의 일상에 끼워 넣은 것이다. 

하교 시간이 제각각인 아이들이 같은 시간대에 모일 수 없더라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 친구의 활동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릴레이 뜨개질, 릴레이 웹툰, 릴레이 뮤직비디오 등 이어 가기 방식의 활동을 제안한다. 여럿이 손을 보태니 목도리 하나쯤은 1~2일 만에 완성할 수 있는데, 이러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이들에게는 재미난 이벤트로 여겨진다. 서로의 재능을 알리고 배울 수 있는 재능 공유 게시판을 설치하니 학생들은 취미를 함께 할 수 있는 수업을 직접 만들고 진행하기도 한다. 아이엠 그라운드를 사용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화여자대학교 학교폭력 예방연구소에서 시설 사용 전후 효과성을 평가했을 때, 학교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10.5% 감소했으며 자아존중감이 약 11% 증가하고, 시설물이 학교폭력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64.3%로 나타났다.


아엠그라운드는 릴레이 놀이를 할 수 있는 블루방, 소그룹 모임에 집중할 수 있는 그린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출처: 서울시


캐나다 토론토의 포용적 고령화 전략, 자연은퇴노인 주거공동체

캐나다도 고령화를 피해 갈 수 없었다. 2020년 50세 이상의 캐나다인 중 거의 절반이 사회적 고립에 처해 있으며, 캐나다 노인의 54% 이상이 외로움을 경험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캐나다는 이미 노인을 위한 커뮤니티와 공공주택이 포화 상태이므로, 다가올 고령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지역의 물리적 구조와 구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자연은퇴노인 주거공동체(Naturally Occurring Retirement Community, NORC) 개념이 등장하고, 이들을 독려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콘도나 아파트 등 일정 범위 내 모여 사는 노인층이 공동체를 구성해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면 정부는 거주지 인근의 의료 시설, 커뮤니티 센터, 노인 친화 교통망 등의 인프라 등을 연계해 일상을 뒷받침한다는 개념이다. 특히 이웃과의 교류 프로그램, 지역 봉사활동, 단체 및 주민 간 파트너십과 같은 NORC를 지원하기 위한 민간 단체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어 새로운 사업으로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토론토시는 고령화사회가 다가올수록 지역사회와 이웃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웃을 알아가고 서로를 돌본다면, 노인이 되어도 자신의 집에서 오래도록 거주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NORC 홈페이지는 일상을 카테고리화하고 다양한 주제와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NORC


일본 가나자와의 공공공간, 쉐어 가나자와

단층 또는 2층 건물로 이뤄진 작은 마을 ‘쉐어 가나자와’는 노인 공동체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대학생, 장애인, 주민들까지 더불어 살게 된 장소로 이상적인 커뮤니티케어 모델이라고 평가받는다. 이 마을에는 주거뿐 아니라 식당, 카페, 요리 교실, 대강당, 목욕탕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여들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세심한 설계를 꼽는다. 여타 마을처럼 배치한 시설들과 구성원 간의 일상적 만남을 유도하기 위한 수공간, 보행자 전용도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주거의 경우 1주택당 주거 면적 25㎡ 이상으로, 우리나라의 최저 주거 기준인 1인 가구 14㎡, 4인 가구 43㎡와 비교해 꽤 넉넉한 공간을 제시한다. 이는 향후 보조기구, 휠체어 사용 등의 거주자 활동에 대한 지원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덩달아 삶의 질이 올라간 공간이란 인식으로 이어져 쉐어 가나자와의 가치를 높이는 계기로 작용한다.

어린이, 장애인, 대학생 등과 같이 삶의 일정 부분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모였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보인다. 인근 작은 농장에 사는 알파카들을 장애인들이 돌보고, 노인들은 장애인들과 교류한다. 그리고 정부는 쉐어 가나자와 구성원의 건강 부분을 지속해서 관리하며 돌보고 있다.

  

쉐어 가나자와 배치도와 중앙홀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모습. 사진 출처: 쉐어 가나자와


독일 슈배비슈 그뮌트시가 지원하는 시니어 네트워크

슈배비슈 그뮌트시는 지역 노인들을 위한 돌봄의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돌봄 서비스 제공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시니어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노인들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자신의 집과 익숙한 환경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구청, 돌봄요양센터, 치매돌봄센터, 상담센터, 시 노인위원회, 교회, 이웃, 주택협회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주거 상담, 장보기, 점심 배달 서비스 등은 기본이고, 아침에 안부 인사를 건네는 돌봄 전화, 돌봄 지원자들이 집으로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문 활동 등도 신청하면 지원받을 수 있다. 동네 이웃과 친분을 쌓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점심 식사를 2유로(약 2800원)에 구매할 수 있는 바우처를 판매하기도 한다. 또한 ‘노인 친화적 서비스’란 인증을 만들어 지역 내에서 이해를 다지며 시설의 공공디자인을 독려하고 개별 디자인물의 가치를 홍보하고 있다. 


청소년, 가족 및 지역 사회 활동 지원센터와 협력해 노인 가정이 안고 있는 일상의 크고 작은 수리나 개조 등 기술적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거나 방법을 알려주는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JuFuN


일본 시즈오카현 지역의 정신을 엮는 모두의 도서관 산가쿠

커뮤니티케어 디자인에 노인 돌봄 문제만 있는 건 아니다. 지역 주민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약속하는 프로젝트라면 모두 커뮤니티케어다. 그런 의미에서 시즈오카현 모두의 도서관 산가쿠 사례가 눈에 띈다. 모두의 도서관 산가쿠 관장이자 사단법인 트리너스의 대표이사 도이 준야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을 키워 개인이나 민간에 의해 행정의 일부를 담당하는, ‘사설 공공’을 추진하는 사회 실험의 장으로 열었다”고 이곳을 소개한다. 훗날 인구 감소로 행정 기능이 축소된다면 시민이 지역을 운영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스스로 도서관이란 공공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한 상자 책장 오너 제도’다. 주민 누구나 도서관 책장 일부를 임대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함께 나눠 읽고 싶은 책을 비치할 수 있다. 세미나나 연구회를 개최할 수도 있다. 도이 준야는 “일본에서는 시민들이 자신을 행정 서비스를 받는 손님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라며 “원하는 서비스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을 함께 쌓아가야 커뮤니티가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책장을 빌린 주민들이 주인의식을 갖도록 월 임대료를 두었다. 사진 출처: 모두의 도서관 


이처럼 커뮤니티케어 디자인은 개개인의 향상된 삶을 위해 어린이부터 학생, 노인까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사회에 넓고 두텁게 깔린 커뮤니티케어 디자인은 공동체의 힘을 발휘하고 서로를 지지하게 하는 단단한 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다. 먼저 커뮤니티케어 관점으로 우리 동네의 공공디자인을 새로이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 


글: 윤솔희, 담당: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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