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지방 소도시가 공공디자인을 통해 살아남는 방법
작성일:
2024-02-01
작성자:
박은영
조회수:
549

[기획] 살고 싶은 지역에는 공공디자인이 있다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39호(2024.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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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도시가 공공디자인을 통해 살아남는 방법

도시민들이 지방 소도시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 흔히 쓰는 방법 중 하나가 집집마다 화려한 색을 입히거나 눈에 띄는 공공 조형물 등을 설치해 가시적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되려 그 지역만의 특색을 잃게 하는 실수가 될 수도 있다. 농촌의 생활환경 개선에 앞장서는 한국농어촌공사의 최찬원 농촌공간계획처 부장은 농촌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자연과 함께하는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지방 소도시가 살아남는 방법이자 공공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이미지 출처: 통계청


지금 농산어촌의 위기와 문제, 외면당하는 이유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한 농촌은 평화롭고 따스했던 곳으로 기억되며 우리의 가슴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심리적 안정과 휴식처 등으로 대변되었다. 하지만 현재 농촌은 저출산, 고령화, 농업소득의 정체, 기후변화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존재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도시에 비해 사회적·경제적 관심 비중이 적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바라보는 농촌은 존재하지만 보이지는 않는 곳, 물리적·심리적으로 잊혀지고 있는 곳이다.

언제부턴가 농촌 공간은 병들고 농촌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농촌의 인구 소멸로 인한 빈집과, 난개발로 인한 공장 등이 농촌의 흉물로 지적된 지 오래며 귀농귀촌인들의 나홀로 집이 늘어나면서 농촌만의 쾌적함이 사라지고 있다. 대도시 중심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지역 이탈 현상도 지속되고 있어 농촌 공간이 지닌 내재적 가치를 보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다 농촌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염려된다. 이제는 농촌이 더 이상 농산물을 생산하는 곳만이 아니라 일터, 삶터, 쉼터로 인식되는 삶의 공간인 만큼 가치 보존을 위한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농촌의 위기는 농촌만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 우리 국가, 우리 사회 전체의 위기로 인식해야 할 만큼 중요하다. 


지방 소도시와 수도권의 공공디자인 차이점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해야 농촌의 다원성과 공익적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지 명쾌한 해답은 없다. 농촌 관련 업무를 25년 이상 하면서 느낀 해답의 첫걸음은 농촌에 대한 이해와 관심부터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크게 수도권과 지방권 체제로 분리되어 있다. 수도권은 인구 고밀을 넘어 과밀을 말하고 있다. 인구의 효율적 분산을 말하고 있지만 지방은 인구 소멸로 인구 유입에 대한 대안을 찾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권의 공공디자인 차이점은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다. 도시 공공디자인에 대한 연구 자료는 차고 넘치지만 농촌 공공디자인에 대한 연구 자료는 거의 없다. 농촌에 대해 걱정만 할 뿐이다. 

공공디자인은 인간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유하며 살아가는 공간 및 시설로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인간의 삶의 질적 향상과 복지를 위하는 것, 사회계층과의 소통과 교류를 포함한 사회적 서비스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농촌은 소통과 교류를 해야 할 사람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지자체마다 인구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아이디어를 우선 내놓고 있다. 좀처럼 인구 감소의 속도는 줄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공디자인의 정의처럼 농촌에 접목하기에는 넘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농촌의 공공디자인은 그 과제를 포함한 도시와의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환경적으로 도시의 시설물은 청년, 노인 등 이용 주체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으나 농촌은 고령자, 다문화, 귀농귀촌인 등 다양한 이용 주체를 아우를 수 있는 복합화된 성격의 시설물 배치와 디자인이 요구된다. 농촌으로 찾아오게 하는 디자인, 머물게 하는 디자인 그리고 일자리가 함께하는 디자인으로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농촌 공간을 보기 좋게만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을 살리고 그 안에 생활하는 주민들을 고려한 시설물의 기능과 용도 설정, 경관의 다원적 특성을 반영해 사람들이 찾아오고 살고 싶은 농촌마을을 만드는 것이 농산어촌의 공공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농촌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지역 특성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어 있지 않고 도시를 닮아가려는 현상이 지금의 현실이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지역 활성화를 위해 개발한 공공디자인 가이드라인. 사진 제공: 한국농어촌공사


도시민들이 농산어촌지역에 관심 갖게 하는 방법

지역 활성화를 위한 공공디자인은 지금의 위기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도시를 닮아가려는 공공디자인이 아닌, 농촌 지역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경관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유럽 국가들의 토지 제도는 건축부자유의 원칙 혹은 계획 우선의 원칙에 따라 ‘계획지향형’으로 제도가 추진되고 있다. 개인은 자신의 토지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음을 원칙으로 하며, 개별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세부적 토지이용계획에 따라 심사되고 허가되고 있다. 지역의 개성과 특성을 살리고 자연과 조화로운 마을을 만들기 위해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토지를 경제적 가치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인 벤조네는 1971년 지진으로 마을이 붕괴되어 새롭게 마을을 건설해야만 했다. 마을 주민들은 악착같이 40년 동안 원형을 되찾기 위해 복원에 힘썼다. 새롭게 신축하는 것이 더 쉬웠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마을의 정체성이 훼손되어 구심점은 사라지고 장기적으로 마을 사람들이 이 마을을 지키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의 애향심은 고취되었고, 2017년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었다. 게다가 연간 3만명 이상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로 재탄생했다.

우리나라는 자유롭게 토지를 이용하고 사후적으로 규제하는 '시장지향형' 방향으로 토지 제도가 형성되어 있어 특색이나 색깔 없는 마을이 여럿 존재하며 무분별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제 정부는 농촌 공간에 대한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지자체 중심으로 공간 계획을 세우고 정부가 나서서 이를 지원하고자 2023년 3월 ‘농촌공간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농촌공간재구조화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농촌 공간의 특성을 고려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난개발 방지와 토지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체계적 토지 이용을 위한 농촌특화지구 지정 및 개별 사업을 농촌협약을 통해 공간 전략과 활성화계획을 수립하고 종합적 패키지사업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농촌 생활서비스 부족 문제를 해결할 주체로 지정·육성하기 위해 ‘농촌 지역 공동체 기반 경제·사회 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농촌경제사회서비스법)’이 올해 하반기에 시행되어 농촌의 개발과 복지, 일자리를 해결하고자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농촌마을에서는 옛것을 보존하고 지켜가는 마을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모두가 비슷한 마을, 특색을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우리만의 지역 색깔과 환경에 맞는 농촌공간계획 수립이 필요했으며, 나아가 농촌의 가치가 반영될 수 있고 지역의 환경과 조화롭게 접목될 수 있는 농촌 건축에 대한 기준과 양식 등을 보완해 가며 농산어촌 공공디자인에 대한 정책 수립 및 연구가 지속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러시아인들의 자연 속 쉼터 다차. 사진 출처: fuelpublishing


공공디자인으로 변화된 미래의 농산어촌지역에 거는 기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농촌에는 사람이 없다. 농촌의 인구가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농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이 생기려면 농촌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경험이란 꼭 농업을 해야 하는 것만이 아니다. 잠시라도 농촌에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러시아인들에게는 자연 속 쉼터라 불리는 다차가 있다. 다차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휴가 문화는 자연 속에서 가족과 함께 소일을 하면서 텃밭에서 채소나 감자 등을 직접 가꾸며 보내는 생산적인 휴가 문화다. 이를 통해 도시와 농촌을 자유롭게 교류하며 관심이 커질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농촌에도 농막 제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도시민이 농촌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나갈 수 있다면 점차 농촌의 인구 유입의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인적이 끊긴 시골엔 빈집만이 넘쳐나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람 구경이 쉽지 않은 시골마을,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만이 남겨진 곳, 농민이 없는 농촌, 식량 안보를 위협 받는 현실에서 농촌만을 위한 공간에 색깔을 입혀가면 좋겠다. 훼손된 경관을 보기 좋게 만들기보다 각 지역의 경관과 농산어촌 시설물의 사용자 구성에 따른 특색을 유지하고 잘 보존하는 것이 지역의 정체성과 경관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농촌에 필요한 공공디자인이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농촌공간을 만들고 싶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사이에서 호흡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디자인으로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


글: 최찬원 한국농어촌공사 농촌공간계획처 부장, 담당: 박은영


이 글을 쓴 최찬원 부장은 지역 주민 중심의 공동체 형성과 농산어촌 활력을 높이는 역량강화교육 및 농어촌종합정보포털서비스 개발, 도농교류 관련 사업 등에 힘써왔다. 현재 공공디자인과 농산어촌 건축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농산어촌 지역개발사업만의 특색 있는 공공디자인을 접목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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