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열섬 현상에 내리는 디자인 처방
작성일:
2023-12-26
작성자:
박은영
조회수:
463

[기획] 친환경 도시를 만드는 순환하는 디자인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38호(202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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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섬 현상에 내리는 디자인 처방

열섬 현상은 도시화에 따른 대표적 환경문제다. 도시의 기온이 다른 일반 지역에 비해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2021년 6월 서울시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 도심이 시내에 분포한 산지・한강 변보다 2도 가량 온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의 공동연구센터(Joint Research Centre)가 2003년부터 2020년까지 도쿄, 뉴욕, 파리, 런던 등을 조사한 결과 도시 지역과 일부 농촌 지역의 지표면 온도 차가 최대 10~15도로 드러났다. 

열섬 현상을 단순히 지나쳐서는 안 되는 이유는 도시의 직접적 재난과 재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 기후변화와 맞물려 실타래처럼 끝없이 문제를 몰고 온다고도 할 수 있다. 2023년 여름 폭염에 따른 국내 온열질환자가 지난해보다 80% 늘어 3000명에 육박했다는 뉴스는 어쩌면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우리의 걱정을 더욱 키우는 건 열섬 현상을 제동할 브레이크가 마땅히 없다는 것. 우리 도시가 춥고 더워질수록 개개인의 전력 소비는 늘고, 이에 따라 탄소 배출량과 오염물질은 대기에 쌓인다. 오염물질은 열섬 현상으로 인해 흩어지지 않고 비구름을 만들어 폭우를 부른다. 과장하면 악순환의 고리가 우리 머리 위에 떠도는 꼴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각국의 도시가 이 고리를 끊기 위해 또는 문제 발생 주기를 늦추기 위해 힘을 쏟는 이유다.

 

랜드셋 8(Landsat 8) 위성자료를 보정하여 복사량, 지표 온도를 환산해 작성한 지표 온도 지도(2022). 파란색이 20도 미만, 빨간색이 35도 이상으로 도시의 열섬 분포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국립환경과학원

 

2014년 1월 30일 야간에 촬영한 한반도 위성 사진.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밤낮 없이 소비하고 있는 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M. Justin Wilkinson, Jacobs at NASA -JSC


열 발생 요소를 줄이는 디자인

열섬 현상의 원인에 따라 처방도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도시로 나오는 인공 열을 막기 위한 시도가 대표적이다. 이 대목에서 주범으로 떠오르는 것은 자동차 배기가스와 건축물의 냉난방기기. 이들을 저감하는 시도는 국내외 가리지 않고 찾아볼 수 있다. 싱가포르는 2019년부터 도시 전역에 워킹 앤 사이클링 디자인(Walking and Cycling Design)을 입히고 있다. 제목처럼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 이용을 장려하겠다는 의도인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일정 규모 이상의 주거시설, 상업시설, 업무시설, 교육시설, 문화시설, 병원시설 등을 새로 짓거나 증축할 때 워킹 앤 사이클링 계획안을 제출해 심의를 받아야 하는 강제성을 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 주차장의 이용 가능 여부에서 주요 대중교통 환승 정거장과의 연결법도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건축물의 접근성을 확대하며 도시 전체의 체질 변화를 꾀하는 시도다.

 

누리집에서 공개하는 워킹 앤 사이클링 디자인 가이드는 기준 치수 정보뿐만 아니라 도로 유형별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 디자인, 표지판 디자인까지 상세히 담고 있다. 

이미지 출처: 싱가포르 육상교통청


한편, 디자인으로 냉난방기기 사용을 줄일 수 있기도 하다. 제로에너지 건물을 보자. 제로에너지 건축물이란 연간 에너지 사용량과 생산량의 합이 ‘0’이 되는 건물이다. 단열이나 기밀 성능을 개선해 에너지 소요량을 줄이고, 보일러나 기계 설비의 효율화를 통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그래도 사용하는 양만큼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는 2023년 2월 시설 노후화로 운영을 중단한 남산창작센터를 대상으로 제로에너지건물 전환 리모델링을 시도했다. 단열재를 보강하고 고성능 시스템 창호로 바꾸고 폐열회수 환기시스템과 태양광 발전설비 등을 설치해 에너지 소요량을 줄이고 에너지 자립률을 높인 것이다. 서울시는 앞으로도 공공뿐 아니라 민간 건축물을 대상으로도 제로에너지 설계를 의무화하고 확대해갈 계획이다.

 

서울시는 먼저 제로에너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고자 제로에너지건물 전환 리모델링 공사 시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왼쪽은 제로에너지 건물의 개념도, 오른쪽은 제로에너지건물로 재탄생한 남산창작센터. 이미지 출처: 서울에너지드림센터(왼쪽), 서울시(오른쪽)


열이 통하는 디자인

열섬 현상에는 인공 열 확산 말고도 다른 주요 원인이 있는데, 바로 아스팔트나 콘크리트가 지표면을 덮어 보온 효과를 높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줄어든 녹지 면적에서 자정 작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 한계를 파고드는 디자인은 녹지를 확대하고 공기를 통하게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프랑스 파리는 2026년까지 나무 17만 그루를 심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도심의 유휴 부지에 나무를 심는 일을 비롯해 파리시를 순환하는 4차선 페리페리케 대로의 양방향 1차선씩을 폐쇄하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기도 하는 등 파격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예산만 1200만 유로, 한화로 170억 원이 들 만큼 대형 프로젝트로, 도시의 쾌적한 열 환경 회복뿐만 아니라 생물 다양성 확대, 적극적인 기후환경문제 대비 등을 위해 과감하게 도시 변화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골목길, 공원, 운동장, 인도와 차도 경계에 나무를 식재하겠다는 콘셉트를 담은 계획도. 이미지 출처: 파리의 나무 계획안(Le Plan Arbre de Paris)


물론 도시계획에 따른 대대적인 식재 외에도 개별 건물의 녹화도 중요한 대안이다. 2020년 좀눈향, 서양측백 등 다양한 지피, 초화류가 서식하고 있는 서울 돈의문박물관마을의 1000㎡ 수직 정원이나 같은 해 유휴 부지로 방치될 뻔한 땅 조각 5000㎡를 생태 공원으로 계획한 부산 금정구의 수림뜨락 등 국내에 다양한 녹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버려진 철도에 꽃과 나무를 심어 도시의 매혹적 장소가 된 뉴욕의 하이라인이나 1995년 준공돼 이제는 에코 빌딩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크로스 후쿠오카 빌딩 등까지 시선을 돌린다면 녹화의 지역과 범위, 규모와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열섬 현상 해소뿐만 아니라 도시의 브랜드 가치까지 높일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첫 ‘서울형 수직정원’으로 벽면녹화, 옥상녹화를 비롯해 온실 1동, 야간경관조명을 설치했다. 사진 출처: 서울시

 

산성터널 조성 사업으로 인해 사라진 수림로 느티나무 숲길을 대신해 정원과 근린시설이 마련된 수림뜨락을 조성했다. 사진 출처: 부산시 금정구


뉴욕의 명물이 된 하이라인 공원은 공중 수목원을 콘셉트로 2만 4000그루의 나무를 식재했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약 60m 높이의 계단식 테라스에는 약 70여 종의 식물 3만 5000종이 식재되어 있다. 사진 출처: 플리커


인프라 영역에서는 열 반사 성능이 높은 특수 안료를 도로포장 면에 도포해 태양광을 반사하고 포장체에 축적되는 열을 감소하는 방법을 시도 중이다. 비슷한 원리로 건물 지붕면을 열 반사 페인트로 칠하거나 녹화하는 시도도 흔히 볼 수 있다. 도심 속 건물이 서서히 모습을 바꾸고 있다면 눈여겨보자. 도시의 미기후를 관리하기 위해 진화하는 디자인의 모습일 수도 있다.


흰 지붕은 태양광선을 65% 이상 반사하는 효과가 있어 ‘쿨 루프’라고도 불린다. 사진 출처: 미디엄 


글: 윤솔희, 담당: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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