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거리 풍경을 바꾸는 흡연부스 디자인
작성일:
2023-12-26
작성자:
박은영
조회수:
844

[기획] 실내외 공기 관리를 돕는 공공디자인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38호(202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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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풍경을 바꾸는 흡연부스 디자인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3》 기간에 특별한 연계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PR학회가 주최한 시간으로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공공디자인 사례를 다뤘는데, 그 주제가 바로 흡연인 것. 그러고 보니 눈여겨 보지 못했을 뿐 간접 흡연은 늘 우리 사회에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다. 공동주택 민원에서 층간소음 다음으로 많고, 지자체 누리집 민원 게시판마다 등장하는 문제로 말이다. 지난 11월에는 상암동에 사는 초등학생이 거리 흡연자에게 쓴 편지가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11월 8일 상암동 내 직장인들이 밀집해 흡연하는 구역에 초등학생들이 쓴 11장의 금연 포스터가 붙었다. 이미지 출처: SBS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3》 연계 세미나에서 발표한 문현배 SEDG 공공디자이너의 말이 새삼 과제로 다가온다. 그는 “흡연 문제는 지자체 내 민원의 증대, 나아가 폭력과 폭행 사고 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전자담배 사용자 증가 등으로 변하는 우리 사회의 흡연 행태를 파악해 각 갈등 상황에 필요한 공공디자인이 필요하다.”라며 흡연부스의 디자인적 접근의 중요성을 알린 것. 그렇다면 오늘날 흡연부스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옆에 있을까.


흡연부스의 제작 배경 

국민건강증진법 개정과 세계보건기구의 금연사업(Tobacco Free Initiative) 등으로 인해 현대에 들어 흡연은 대표적 규제 대상이 되었다. 과장해 표현하면 도시에서 내몰리는 신세다. 서울시의 경우 2022년 12월 31일 기준 금연구역만 29만 7539개소이고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인 반면, 실외 흡연시설은 67개소(2023년 11월 28일 기준)다. 금연구역 확대에 따른 일시적 증설은 필요하다고 여기나 그 수를 늘리는 데에는 굳건히 소극적이다. 흡연구역, 흡연실 확대에 대한 흡연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금연구역 지정은 관련 법규가 촘촘히 마련되어 있으나 흡연시설 설치는 의무가 아니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에서 '흡연실' 설치를 자율 의지로 두고,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 별표2에서 '흡연실' 설치 방법과 기준을 알리는 것이 현재로서 전부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음식점이나 당구장*에서 보는 흡연시설은 모두 이 기준에 따라 설치되고 운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흡연을 조장하는 환경 근절을 위한 금연종합대책’에 따라 2025년까지 국내 모든 건물에 실내흡연실은 폐쇄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본 기사가 흡연부스 디자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흡연부스는 도시의 필수 인프라로 그 중요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2023년 10월 서울 주요 관문에 도시의 첫인상이 될 상징숲을 조성한다고 발표했을 때 공공화장실 다음으로 서울형 흡연부스 개발을 강조한 모습만 봐도 흡연부스가 도시에서 갖는 역할과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서울시는 2022년 11월부터 여의도, 뚝섬, 반포 등 한강공원에 흡연부스 17개소를 설치했다. 개방형 흡연부스로 내부에는 소화기와 재떨이, 쓰레기통이 비치되어 있다. 

사진 출처: 서울시 미래한강본부 누리집


덜 해로운 흡연부스 디자인

흡연부스도 사실 시대에 발맞춰 진화하고 있다. 조촐한 오두막처럼 지붕만 있는 쉘터에서 공기정화기, 제연기 등을 장착해 흡연이 일으킬 환경 피해를 스마트하게 줄이는 시도도 등장했다. 흡연자, 비흡연자 모두에게 친화적 방식으로 겉과 속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중구, 자연환기식 흡연부스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담배 규제에 관한 기본 협약(FCTC)」에서 밀폐형보다는 개방형 흡연 부스를 권고한 내용을 참고했다. 보행자의 간접 흡연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붕과 벽면 구조를 세우되 이 중 50%는 개방해 흡연자의 간접 흡연도 줄이려고 했다. 성능이 뛰어난 공기정화 설비가 있더라도 공기 질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고 또 폐쇄성이 강할수록 유지, 관리의 어려움도 있다는 데 의의를 둔 것. 현재 흡연부스를 시범 운영한 후 수정, 보완하여 2024년에 확대 설치할 계획이다.

 

지붕과 한쪽 벽만을 세워 최소한의 영역 지정 효과를 낸 중구의 자연환기식 흡연부스. 사진 출처: 서울시 중구


인천, 인천형 흡연부스 표준디자인

인천시의 인천형 흡연부스 표준디자인은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2》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적 있다. 인천시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겠다는 목표로 추진하는 공공화장실, 쓰레기통 등 생활 밀착형 공공시설물 디자인 사업에 흡연부스가 포함되어 있는 것. 2019년 기준 전국 특·광역시 중 가장 흡연율이 높은 도시인 만큼 흡연부스의 활용, 그로 인해 한층 더 나아질 길거리 모습에 기대를 걸었다. 서울시 중구 흡연부스와 비슷하게 인천시 역시 개방형 디자인으로 자연환기를 택했다. 휠체어 이용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경사로를 추가한 점이 돋보인다. 

 

인천시는 흡연부스 표준안을 민간용과 공공기관용 두 타입으로 제작해 배포할 계획이다. 사진 출처: 인천시


일본, 복합쇼핑몰 그랑트리 무사시코스키의 실내 흡연부스

독립 시설물로 존재하는 흡연부스가 있는가 하면, 가와사키시의 복합쇼핑몰 그랑 트리 무사시코스키(Grand Tree Musashikosugi)의 1층 흡연실은 실내에 속한 흡연부스다. 설계사무소 히로유키 오가와 아키텍츠(Hiroyuki Ogawa Architects)의 디자인으로, 담배의 연기가 모이게끔 벽을 조각하고 그 벽의 끝 천장 면에 배기구를 설치해 자연스러운 공기의 흐름을 끌어냈다. 또한 성인 허리 높이에 마련된 재떨이와 배기구 사이에 팬을 설치해 담배가 타며 나는 연기, 입에서 나는 연기 등을 빠르게 흡입하도록 했다. 입구 반대편 벽에는 흰색 도트 시트를 깔아 마치 안개가 자욱하게 찬 듯한 느낌을 표현했다. 설비와 공간을 통합해 디자인하면 흡연부스의 미적 완성도나 사용자 경험 개선까지 아우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흡연부스 내 연기와 공기의 흐름도와 인테리어 전경 모습. 이미치 출처: 히로유키 오가와 아키텍츠


금연구역 & 흡연구역 안내 디자인

흡연 관련 안내 디자인에는 포함 요소, 부착 위치 등에 대한 의무 사항이 존재한다. 예컨대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제4항에는 건물 내 금연구역을 알리는 표지 설치 제도가 명시되어 있다. 표지에는 금연을 상징하는 그림 또는 문자, 흡연 시 10만 원의 과태료 부과 등 위반 조치 사항이 포함되어야 하고, 독립된 건물의 경우 출입구마다 금연 표지를 설치 또는 부착해야 한다. 이 밖에도 계단, 화장실 등 공공이 사용하는 장소에도 표지를 추가하기를 권고한다.

  

전자담배 관련 금연구역 표지로 금연두드림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이미지 출처: 금연두드림


건물의 규모나 구조에 따라 표지판 또는 스티커 크기를 다르게 할 수 있지만, 공통된 디자인 원칙은 바탕색과 글씨 색상이 눈에 잘 띄도록 배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금연두드림에서 배포하고 있는 유치원·어린이집, 초중고등학교를 위한 금연구역 표지의 경우 고딕 계열의 서체와 서로 대비되는 채도가 높은 원색을 다수 적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유치원·어린이집 주변을 위한 자유형, 벽면형, 바닥형 금연구역 표지. 이미지 출처: 금연두드림


건물 내에 흡연실을 설치한 경우에는 시설 전체가 금연구역이라는 표시와 함께 흡연실 표지판을 달거나 부착하여야 한다. 또한, 흡연시설 내부에는 재떨이(쓰레기통) 및 국가금연지원서비스 안내문을 의무적으로 설치하여야 하고, 의무설치 사항 이외의 시설 설치나 물품 제공은 모두 금지한다.

이처럼 확대와 축소, 기능의 고도화와 간소화 등 여러 면에서 흡연부스는 첨예한 대립의 장이다. 부스 색채 권고안만 봐도 그렇다. 흡연자의 흡연 욕구를 자극할 수 있으므로 눈에 덜 띄도록 디자인해야 하지만, 금연구역과 흡연구역 등 영역 정보는 최대한 명료하게 보행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 즉 흡연부스를 둘러싼 디자인은 앞으로도 논의할 과제가 많다. 공공디자인계에서 꾸준히 관심을 두고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글: 윤솔희, 담당: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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