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포용적 교육 전문가가 전하는 차별 없는 미술관 경험
작성일:
2023-08-22
작성자:
소식지관리자
조회수:
1025

[기획] 차별 없는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34호(2023. 09)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포용적 교육 전문가가 전하는 차별 없는 미술관 경험 


‘차별 해소 방안’만 검색해도 각계 분야의 분투 흔적이 쏟아지는 이때, 시각뿐 아니라 청각, 촉각, 후각 등 여러 감각을 앞세워 접근성을 높이려는 미술관의 노력이 눈에 띈다. ‘대중의 즐거움과 교육을 위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립한 시설’이란 미술관 역할에 따라 차별 말고 포용을, 틀림 말고 다름을 말하는 여러 제안이 탄생하고 있다. 

그중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Peggy Guggenheim Collection)의 활동에 주목했다. 페기 구겐하임은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의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미술관으로,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잭슨 폴록 등 세기의 예술가 작품을 소장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모든 방문객은 전시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All visitors can enjoy the works of art on view)."란 다소 단순하고 어쩌면 당연한 미션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며, 소외되었던 비-관람객을 포용하고자 관람 방식을 다각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어보고자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발레리아 보탈리코(Valeria Bottalico)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이미지 출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Photo ©Fei Xu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이 설치된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1층 입구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이 설치된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1층 입구. 이미지 출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Photo AndreaSarti/CAST1466)


미술관에서 포용적 교육을 맡고 있다고요. 좀 더 자세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탈리아 미술사학자이자 언어학자이며 포용적 교육 전문가이자 참여적 행동 전략 디자이너입니다. 박물관과 문화 단체를 위한 혁신적이고 포용적인 공공 프로그램, 교육 프로젝트, 참여형 커뮤니티 행사를 설계, 진행, 관리하는 부문에서 15년 이상 경력을 쌓았습니다. 특히 장애인을 위해 설계된 전략과 도구를 비장애인도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베네치아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과는 수년 동안 협력하여 ‘더블 미닝’ 프로젝트를 만들며 큐레이팅을 했습니다. ‘더블 미닝’이란 소장품을 통한 촉각 여행이란 콘셉트로, 시각장애의 유무 관계 없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포괄적인 프로그램입니다.


평등한 접근성에 대한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의 관심은 언제 시작되었나요?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즐기며, 과학적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 1항에 명시되어 있는 문장입니다. 박물관/미술관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문화유산을 만나고 즐길 수 있는 장소여야 하지요. 그러니 평등한 접근성에 대한 기관의 노력은 단순한 친절 또는 양보, 연대의 행위로 볼 게 아니라 관람객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람객의 특징을 하나로 특정할 수 없다는 건 모두 이해하실 겁니다. 저마다 독특하고 유일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박물관/미술관의 접근성 디자인은 관람객마다 다른 요구와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 어떠한 물리적, 감각적, 문화적, 경제적, 언어적 장벽을 허물어야 하는지에 관한 적절한 지침과 도구 설계를 뜻합니다.

창립자 페기 구겐하임은 생전에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 궁전(Palazzo Venier dei Leoni, 그녀의 집이자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건물)을 특별 개관해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컬렉션을 가까이에서 관람하도록 한 바 있습니다. 이 정신을 이어받아 완전한 접근성을 확보하고 대중에게 다양한 무료 활동을 제공하는 것이 오늘날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의 사명이자 실천 사항입니다.


키트는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서 손꼽히는 예술가 작품 11점의 캡션과 설명 글이 점자와 가독성이 높은 문자로 적혀 있다.

키트는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서 손꼽히는 예술가 작품 11점의 캡션과 설명 글이 점자와 가독성이 높은 문자로 적혀 있다. 

이미지 출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Photo ©Fei Xu


촉각 투어 프로젝트 ‘더블 미닝’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더블 미닝’ 체험은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죠. 다만, 성인과 어린이 연령만 나눠 진행할 뿐입니다. 매월 토요일은 성인을 위한, 일요일은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열립니다. 작가, 트레이너, 미술관 접근성 전문가, 디자이너,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개별 촉각 경험 가이드와 작품에 관한 심상과 촉각 경험을 통합하는 워크숍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워크숍은 시각장애인 조각가가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함께 하는 감상입니다.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작품과 작가에 대해 대화하며 2개의 목소리와 2개의 관점으로 해당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요. 한 사람은 촉각으로, 다른 한 사람은 시각으로 감각하기 때문에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다르지만 전시 관람의 궁극적 목표, 즉 예술을 즐기는 기쁨, 복합적 이해를 원하는 마음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없으면 우리에 관한 것도 없다(Nothing about us without us).”란 슬로건을 따르는 이 접근 방식은 직원 교육, 방문 경험 설계에도 효과적입니다. 시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 가이드가 함께 작품을 관람하는 법은 2015년 이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부터 혁신적이고 포용성이 높은 시도라고 평가받았습니다. 


더블 미닝은 몇 명이 함께 참여할 수 있나요? 참가자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한 번에 5~6명씩 진행합니다. 한 사람씩 촉각 경험을 진행하므로 그룹 인원이 적으면 대기 시간이 짧아지죠. 촉각 경험에는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방문객은 이 기회를 통해 느림과 경청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다양하고, 전달하는 방법은 복잡합니다. 각 작품에는 고유한 정체성과 시적, 미학적 책임이 있고요. 이에 작품에 대해 설명할 때 참여자가 작품 속 공간을 여행하고 그것의 분위기를 읽고 선과 형태를 세세히 파악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합니다. 질감이나 선의 굵기 등 손끝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는 시각장애인의 인지적, 미적, 경험적 세계를 넓힐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촉각 경험용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 형상의 표현과 추상화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을 우선했습니다. 


영어 또는 이탈리아어로 된 촉각 작품 해설 키트도 누구나 받아 갈 수 있지요. 무료로 자료를 배포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2015년 시작된 더블 미닝 프로젝트는 점차 진화했고 시각장애인을 시작으로 비시각장애인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장이 되었습니다. 원래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단기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렇듯 미술관의 영구 프로그램이 되었으니 그 인기를 가늠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전 세계가 겪어야 했던 팬데믹이란 이유로,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더 알아봐야 했습니다. 그러한 필요가 촉각 작품 해설 키트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탈리아의 한 도자기 회사의 지원이 따라 줬기에 가능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부터 바실리 칸딘스키, 피트 몬드리안부터 조르조 데 키리코, 파울 클레와 르네 마그리트에 이르기까지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서 손꼽히는 예술가 작품 11점을 부조로 재현한 이 키트는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된 캡션과 설명 글이 점자와 가독성이 높은 문자로 적혀 있고 오디오 링크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매표소에서 누구나 무료로 받아 갈 수 있어요. 또한 이 부조 복제본 중 5점은 전시실 안 원본 작품 옆에 비치해 두기도 했습니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서는 다양한 접근성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다른 국적의 관람객이 자신의 모국어로 전시를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뮤지엄에 간다(I Go to the Museum)’, 미술관 오픈 전 아침, 75세 이상의 지역 노인들을 초대해 무료로 전시 투어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이스테이트 팔라쪼(Estate a Palazzo)’ 등이 있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서는 다양한 접근성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다른 국적의 관람객이 자신의 모국어로 전시를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뮤지엄에 간다(I Go to the Museum)’, 미술관 오픈 전 아침, 75세 이상의 지역 노인들을 초대해 무료로 전시 투어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이스테이트 팔라쪼(Estate a Palazzo)’ 등이 있다. 이미지 출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홈페이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발견하는 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떤 관점으로 이것은 차별이다고 진단하나요?

말씀처럼 무엇이 차별인가를 파악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하고 솔직하게 응수하기로 했습니다. 페기 구겐하임이 수집한 컬렉션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알고 즐길 수 있게 하자고 말이죠. 이처럼 우리는 차별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즐거움, 필요, 필요한 도구,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에 방해가 되거나 방해가 될 수 있는 요소에 대해 고민합니다. 포용적 촉각 투어도 완전한 다감각적 접근에 초점을 맞춘 겁니다. 촉각은 우리 몸 전체를 관통하는 감각 기관으로 우리 자신과 타인, 그리고 주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인식하는 경로이니까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술관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평등성과 접근성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년간 이 분야를 고민해 온 전문가로서 ‘차별 없음’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평등한 접근성을 이야기할 때 먼저 장애인, 또는 보행, 감각, 지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떠올리지만 생각보다 더 많이 있습니다. 우리 곁의 어린이, 임산부, 노인을 비롯해 지식과 복지에 대한 필요와 욕구를 가진 사람 모두가 관심을 가질 주제이죠. 즉, 가능한 한 우리 주변의 존재에 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며 인류학적 관점뿐만 아니라 문화적 관점도 가져야 합니다.

문화유산에 대한 접근성과 평등성은 최근 몇 년 동안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규정을 채택하고 기존과 다른 교육 모델을 개발할 때 이 두 가지를 근본적으로 성찰합니다. 사회 시스템에 장애인을 포함하는 것이라 이해되는 본질적인 통합의 가치, 그리고 장애를 손상이나 결핍이 아닌 복잡하고 독특한 특성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지원'이라는 개념에서 개인의 특수성과 잠재력을 인정하고 향상하는 접근으로 개념을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죠. 


마지막으로 현재 준비 중인 서비스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최근 몇 년 동안 저는 여러 문화기관 및 박물관과 협력하여 직원을 교육하고, 접근성 및 참여 예술 문제에 중점을 둔 교육 활동을 설계하고 조정했습니다. 다음 프로젝트로는 현대 및 민족-인류학 영역에 관한 새로운 공간, 그와 관련된 활동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매번 배우는 건 접근성, 또는 사용성은 한 번에 얻을 수 없고 또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방문객의 직접적 경험을 통해 나날이 진화할 뿐이죠. 중요한 건 촉각 또는 기술이란 ‘도구’에 접근성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평등한 접근성은 지식을 나누고 참여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모두의 열망이 내는 시너지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유일무이한 해결책은 없으며 ‘모범 사례’가 있을 뿐입니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전경. 이미지 출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전경. 이미지 출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Photo Matteo De Fina


글: 윤솔희, 담당: 박은영

빠른 이동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