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고용 사각지대를 밝히는 비즈니스 모델
작성일:
2023-08-22
작성자:
소식지관리자
조회수:
794

[기획] 누구나 편리하게 살 권리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34호(202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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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사각지대를 밝히는 비즈니스 모델


일을 통해 얻는 건 생계에 필요한 돈도 있지만 소속감, 자기효능감, 성취감도 있다. 그러므로 공동체 안에서 ‘내 일’이 있다는 감각은 꽤 중요하다. 하지만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만으로 구직 활동과 근로 기회를 담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 이민자, 고령자, 실업자 등의 노동시장 약자 집단에게는 특히 높은 장벽이다. 

2022년 4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2022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기업 1,800,0156개 기업 중 장애인 고용기업체 비율은 4.3%, 장애인 고용률은 1.49%에 그쳤다. 같은 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를 봐도 노숙인 미취업률이 74.1%를 기록한다. 물론 해외 사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해외는 새로운 땅에 정착해야 하는 난민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난민이 자국 노동시장에 들어올 때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크고 고용 기회가 줄며 평균 임금이 떨어질 것이란 생각이 사회에 팽배하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난민으로서는 일자리를 구해야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데 정보를 얻는 것도, 실제 일로 연결되는 것도 쉽지 않다. 

노동시장의 약자 집단에 대한 편견과 혐오, 오해와 몰이해를 해소하고 같이 일하며 사회를 함께 가꿔 나가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먼저 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특징을 개인의 강점으로 이해하고 사업의 추진 동력으로 삼은 집단을 소개한다. 이들은 자신의 시도가 공동체의 차별을 허무는 마중물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발달장애인이 만들어 가는 베어베터


“발달장애인이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비장애인과 똑같은 시간, 똑같은 강도, 똑같은 속도로 일할 수 없을 뿐입니다. 

베어베터에서는 비장애인 1명이 할 수 있는 일을 세분화하여, 

발달장애인 여러 명이 반복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직무를 세팅했습니다.” 

-김정호, 이진희 베어베터 대표 인터뷰 부분 발췌 (출처: “Bear.Better. Bear Makes the World Better.”) 베어베터 웹사이트 http://www.bearbetter.net/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의 지속 가능한 고용’이란 미션 아래 인쇄, 제과・제빵, 원두・커피, 꽃 배달, 발달장애인 고용 관리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2년 6월 5명의 발달장애인 근로자와 출발했는데, 2020년 기준 240명이 넘는 발달장애 직원을 고용하고, 또 60명이 넘는 직원을 대기업으로 이직시켰다. 직원의 이직 소식을 이렇게 기쁘게 자랑할 정도로,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을 사업의 주인공으로 둔다.

베어베터는 장애인 의무고용 조항에서 사업의 단서를 찾았다고 한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28조에 따라 상시 4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그 근로자 총수의 5% 범위 이상으로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고 고용하지 않으면 부담금을 납부해야 하는 조항이다. 이때 베어베터 같은 장애인표준사업장과 거래하면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50%까지 감면받을 수 있는 것이다. 베어베터의 사업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아이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계기이다. 특히 이들은 사업 초기부터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매력적인 디자인이 ‘질 좋은 설비를 이용한 숙련된 제작자들의 우수한 제품’이란 소개 인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전체 BI, CI 브랜딩은 모두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 전문 회사 제이오에이치가 맡아 진행했다. 곰 베베는 무뚝뚝하고 고집스럽고 단조로운 표정을 하고 있지만, 약속을 잘 지키며 성실하고 우직하게 일하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곰 마스코트 이름은 베베. 재빠르지 않아도 우직하고 성실한 베어베터 구성원의 이미지를 친근하게 전달하는 역할이다.

곰 마스코트 이름은 베베. 재빠르지 않아도 우직하고 성실한 베어베터 구성원의 이미지를 친근하게 전달하는 역할이다. 이미지 출처: 베어베터 웹사이트


특별한 디자이너의 집합소, 키뮤스튜디오


“특별한 디자이너분들과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이분들이 그린 원화가 너무 좋아서 같이 일을 하는 것이지, 저희가 돕는 게 아니니까요.” 

-키뮤스튜디오 남장원 대표 인터뷰 발췌(출처: “이 곳에 가면 특별한 디자이너가 있다…‘키뮤스튜디오’의 영업비밀”)

키뮤 웹사이트 https://www.kimustudio.com/


국민은행, 삼성전자, 아모레퍼시픽, 한국조폐공사, 한국건강관리협회 등 대기업부터 공공기관까지 내놓는 컬래버레이션 목록마다 공통으로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키뮤스튜디오다. 2018년 문을 연 키뮤스튜디오는 디자인 창작물로 아트 상품과 굿즈를 제작하는 기업이다. 디자이너 8명 중 6명이 발달장애인이고, 여러 디자이너가 협력해 한 작품을 완성하는 시스템이 여기 키뮤스튜디오만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평등, 환경, 공동체 등 이 시대에 중요한 가치들을 디자인으로 나누며 세상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남장원 키뮤스튜디오 대표는 2008년 충현복지관 공익근무요원으로, 직업 재활팀 미술교육을 담당하던 당시 수업을 듣던 학생들의 표현 방식과 감성에 매료돼 이 좋은 작품을 다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처음 사업을 떠올렸다고 한다.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충현복지관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복지관 내 키뮤디자인학과를 개설해 3년짜리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과정을 이수한 예비 디자이너를 키뮤스튜디오 정직원으로 채용해 본격적으로 일을 같이한다. 또한, 기업과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를 연결하는 키뮤 브릿지도 운영 중이며, 사내 소셜 벤처도 지원하고 있다.


다양한 협업을 통해 기관의 정책, 기업의 제품 등을 돋보이게 디자인하는 키뮤스튜디오의 작업

다양한 협업을 통해 기관의 정책, 기업의 제품 등을 돋보이게 디자인하는 키뮤스튜디오의 작업. 이미지 출처: 키뮤스튜디오 웹사이트


노숙자・고령자가 커넥터란 이름으로 일하는 두핸즈


“제조업을 하겠다고 시작한 회사가 아니라 (취약계층)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인 회사인 만큼, 

우리가 고도화한 물류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하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박찬재 두핸즈 대표 인터뷰 발췌(출처: 사회적기업도 테크가 되나요? 두핸즈의 생존 전략) 두핸즈 웹사이트 https://dohands.com/mvg


‘일자리를 넓혀 인간의 존엄성을 넓힌다.’ 풀필먼트* 테크 스타트업 두핸즈의 사명이다. 2012년 명동에서 노숙자들과 종이 옷걸이를 제조하는 사업으로 시작한 소셜벤처 두손이 10년 만에 누적 32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물류 사업의 신흥강자로 활약 중인 것. 그 사이에 대통령상(2013), 국무총리 표창(2017) 수상도 했다. 

박찬재 두핸즈 대표는 2011년 서울역의 노숙자 퇴거 조치 기사를 본 후 서울역 광장에 갔고,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일시적인 무료 급식이나 잠자리가 아니라 앞으로 먹고살게 해줄 일자리임을 파악했다. 이에 특정 브랜드의 종이 옷걸이를 제작하거나 자체 제작 종이 옷걸이에 광고를 붙여 판매하는 사업을 직원들과 성공시키며 기반을 만들었다. 헌책방 사업, 전자기기 리사이틀 사업에서 고배를 마신 다음 얻은 쾌거였다. 3년간 31만 개의 종이 옷걸이를 만들고 배송하는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물류업에 대입하며 현재 온라인 셀러를 위한 맞춤형 물류 대행 서비스를 전개하고 있다.

현재 두핸즈는 전체 구성원의 30%를 취약계층에서 채용하며, 사내에서는 취약계층이라는 말 대신 동료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담아 ‘커넥터’라고 부른다. IMF로 파산한 후 자활 센터를 오가던 중 두핸즈에 입사해 물류 센터 파트장으로 활약하는 사람, 81세로 두핸즈 신입사원이 되어 지하철 택배원으로 근무한 사람 등이 이곳에 있다.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사내 사회복지사가 이들의 채용과 업무를 담당하며 정기적인 면담과 교육으로 개인 생활의 개선 진척도를 파악한다. 

 *풀필먼트란 상품의 입고부터 배송까지 물류 전체를 일괄 대행해주는 서비스다.

옷걸이 제조 산업으로 시작해 풀필먼트 테크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두핸즈에게는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이란 목표가 있었다.

옷걸이 제조 산업으로 시작해 풀필먼트 테크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두핸즈에게는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이란 목표가 있었다. (이미지 출처: 두핸즈 웹사이트)


난민 청소년을 위한 새로운 정착지이자 일터, 마그다스 호텔


“난민이라고 뭉뚱그려보지 않고 개인을 본다면 

각자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인재들입니다. 

이는 호스피탈리티 산업의 중요한 자산이죠.”

-가브리엘 손라이트너(Gabriela Sonnleitner) 마그다스 호텔 CEO 인터뷰 발췌(출처: “magdas HOTEL: Changing the world while sleeping”) 

마그다스 호텔 웹사이트 https://www.magdas.at/en/magdas-hotel/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마그다스 호텔(Magdas Hotel)은 ‘잠자는 동안 세상을 바꾸다’란 슬로건으로 유명하다. 이민자, 난민 등이란 이름표를 얻은 채 저마다의 사정으로 마그다스 호텔에 온 이들에게 잠자리와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난민 배경을 가진 이민자 약 20명, 투어 전문가 약 10명이 일하고 있으며 호텔 동 바로 옆 건물에 거주한다. 일자리란 리셉션, 주방, 서비스 등 합법적이고 정당한 호텔 안팎의 일들이다. 이처럼 마그다스 호텔은 소셜 비즈니스 호텔을 모토로 삼으며 이들이 취업 시장에서 느낄 장벽을 허물겠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는 자선단체 카리타스(Caritas)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150만 유로 기금에 크라우드 펀딩으로 6만 유로를 더해 사업 자본을 모았다. 그럼에도 자본이 부족한 탓에 카리타스가 운영하던 양로원을 호텔로 리모델링하는 과정, 그 안에 인테리어 과정 모두 지역 주민과 난민의 정성적, 정량적 지원이 더해졌다.

총 88개 객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평균 가동률이 70%다. 운영한 지 2년만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웹사이트 메인에 적힌 “상업적으로 생각하세요. 책임감 있게 행동하세요.(Think commercially. Act responsibly.)”란 글귀처럼 이곳은 사회적 가치를 방패 삼지 않고 퀄리티로 승부를 띄운다. 실제로 입지가 좋고 서비스가 좋아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한다. 

 

옛 양로원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폐자재를 활용해 마그다스 호텔만의 분위기를 완성했다.

옛 양로원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폐자재를 활용해 마그다스 호텔만의 분위기를 완성했다. 이미지 출처: 마그다스 호텔 웹사이트


일상을 여는 디자인 자급자족, 쿠룰라


“쿠룰라는 사실 유토피아입니다. ・・・ (당장) 이들은 일을 하거나 돈을 벌 수 없죠. 

그러므로 이들이 주도하는 회사와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상상하는 데에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쿠룰라 팀 인터뷰 발췌(출처: “CUCULA counters hostility through collaborative design”), 쿠룰라 웹사이트 https://www.cucula.org/en/


난민과 이민자가 직접 가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판매하며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디자인 고육을 하는 독일의 공예・디자인 단체 쿠룰라(CUCULA). 이들에게 디자인이란 단순한 시각 언어가 아니라 공동체에게 희망, 회복, 내일을 뜻하는 힘으로 쓰인다.

‘디자인 자급자족’이란 뜻의 ‘아우토프로제타지오네(Autoprogettazione)’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는 1974년 이탈리아 디자이너 엔조 마리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자신만의 가구를 만들 수 있도록 가구 디자인 및 제작 방법을 적은 저서에서 출발한다. 당시에는 디자인 민주화를 꿈꾸는 도발적인 반론이었다. 40년 후인 2014년 엔조 마리는 쿠룰라에게 이 디자인의 사용, 재창조 권한을 넘겼다. 그리고 쿠룰라는 이 개념을 들고 베를린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난민과 이주민을 모아 가구 제작 워크숍을 열었다. 누구나 자신의 느낌대로 디자인할 수 있도록 말이다.

1년 코스이며 기본 독일어 수업과 목공 수업을 겸한다. 워크숍에 참석한 이들은 기술적인 성취도 느끼지만 소속감, 자존감 등을 얻으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발견할 수 있다고 회고한다. 

가구 판매로 얻은 쿠룰라 수익금은 난민 교육 및 생활비로 사용된다.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을 비롯해 메타의 최고 운영 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도 쿠룰라의 엠버서더로 이름을 올리고 이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있다.

 

재료는 같아도 디자이너마다 결과는 다른 법. 워크숍 참가자들이 디자인한 가구들.

재료는 같아도 디자이너마다 결과는 다른 법. 워크숍 참가자들이 디자인한 가구들. 이미지 출처: 쿠룰라 웹사이트


우리가 만든 식탁에서 만납시다, 더 부카머


“디자이너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주제를 프로젝트화해 가시화할 힘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또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게 할 수 있죠.”

-핌 반 데르 마일 더 부카머 창립자 인터뷰 발췌(출처: “Pim van der Mijl designs "living room" to bring refugees and locals together”), 

더 부카머 웹사이트 https://devoorkamer.org/


더 부카머(De Voorkamer)는 아이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 졸업생 핌 반 데르 마일이 학교에서 배운 소셜 디자인 방법론을 스튜디오 밖에서 일어나는 사회 문제에 적용하며 탄생됐다. 동네 난민센터에 간 것이 계기였는데, 난민은 저마다 관심사가 다양했고 각자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민센터와 마을 사이에 지울 수 없는 거리감이 존재했다. 그 때문인지 난민의 생활은 폐쇄적이었고 타인에게 의존적이었다. 이에 ‘타자화’와 ‘라벨링’을 지우고 마을과 난민센터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디자인을 끌고 왔다.

첫 미션은 난민과 지역주민이 함께할 수 있는 공동의 거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먼저 동네의 공간 하나를 임대하고 난민과 함께 공간을 채우고 디자인했다. 벽면 페인팅을 비롯해 테이블, 패브릭 등을 모두 함께 만들었다. 이후 이벤트를 열기 시작했다. 난민과 지역주민이 함께 요리하고 식사를 할 수 있는 행사를 열고 연주, 뜨개, 회화, 요리 등 난민 각자 자신이 공유할 수 있는 주제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안에 들어온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원칙에 기반해 자신의 문화를 나누고 능력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만든 것이다. 더 부카머는 말한다. “낯선 것을 연결하는 데에 디자인만 한 게 없다”고. 

 

더 부카머가 만든 공간에서는 난민과 지역주민 구분 없이 모두 이웃이다.

더 부카머가 만든 공간에서는 난민과 지역주민 구분 없이 모두 이웃이다. 이미지 출처: 더 부카머 웹사이트


글: 윤솔희, 담당: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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