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차별과 편견을 새롭게 바라본 디자인
작성일:
2023-08-22
작성자:
소식지관리자
조회수:
1414

[기획] 누구나 편리하게 살 권리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34호(202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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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을 새롭게 바라본 디자인


어린이나 노인, 임산부, 휠체어 사용자 모두가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한 저상 버스,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 블록, 인스턴트 커피의 이지 컷 패키지 등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누군가는 불편하게 느낀 사용 경험을 개선해 보다 편리하게 바꾸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거기에는 사용자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보다 포괄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정량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상대적 약자의 숨은 니즈를 파악하기 어렵고, 해결은 더 쉽지 않다. 적극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해 디자인 문해력을 높인 국내외 디자인 사례를 모았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정보&서비스

개인 정보 접근성 확대, 점자 여권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시도한 점자여권은 외교부가 시각장애인 맞춤형 서비스의 일환으로 개발했다. 2018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발급을 시행(1~3급 시각장애인 대상)했으며, 2019년 7월 장애 정도에 상관 없이 본인이 희망할 경우 모든 시각장애인에게 점자여권을 발급하고 있다. 점자여권은 성명, 여권번호, 발급일, 만료일 등 주요 여권 정보를 점자로 기록한 투명 스티커를 여권 앞뒷면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로써 해외여행에 따른 항공, 숙소 등 예약 시 본인의 여권 정보 확인에 불편을 겪어온 시각장애인들이 보다 간편하고 쉽게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실질적인 편의를 크게 증진시킨 셈이다. 

시각장애인의 여권 정보 접근성을 확대한 점자 스티커 여권 예시.

시각장애인의 여권 정보 접근성을 확대한 점자 스티커 여권 예시. 자료 출처: 외교부 홈페이지 


모두에게 열린 정보, 키오스크

소셜 벤처 기업 닷(dot)이 선보인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더 많은 사용자가 정보를 더 쉽고 편리하게 확인하자는 취지로 개발되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교통약자 모두가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사용자가 키오스크 앞에 서면, 자동 센서가 키를 감지해 어린이와 휠체어 사용자의 키에 맞춰 화면이 내려가는 시스템이다. 수동으로도 높이 조절이 가능하며 누구나 눈높이에 맞춰 이용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과 점자로도 안내하며 촉각 디스플레이로 지도와 그림 등의 정보를 전달한다. 좌측 하단에 있는 수어 영상을 통해 청각장애인도 쉽고 편리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시각, 촉각, 지체장애인 모두를 위한 배려를 담은 키오스크는 ‘2022년 한국유니버설디자인’ 제품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든 사용자가 손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모든 사용자가 손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사진 출처: 닷 홈페이지 


쉽고 편하게 읽고 쓰도록, 유니버설디자인 서체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는 고령층과 저시력인까지 아우르는 유니버설디자인 서체를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다. ‘KoddiUD 온고딕 서체’는 유니버설디자인 개념을 담은 서체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 쉽도록’ 제작되었다. 고령자나 노안, 저시력자 등 시력 약자들도 인지하기 쉽도록 만들어진 글꼴로 기존의 고딕 서체를 분석하여 오독의 여지가 높고 인지상의 문제가 있는 글자를 연구해 작은 글자 등 열악한 글자 상황에서도 판독의 문제가 없도록 했다.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여 중립성을 높이고, 인쇄용으로 익숙한 명조 꼴의 편안한 손맛을 응용해 고딕 글꼴임에도 불구하고 가독성 높게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시각장애인 30명을 포함한 10~70대 332명을 대상으로 타고딕 글꼴과 함께 사용성 평가를 진행해 판독성, 가독성의 검증과정을 거쳤다.

KoddiUD 온고딕은 기존의 고딕 서체에 비해 초성 꼭지나 중성 곁줄기를 더 부각해 판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 되었다.

KoddiUD 온고딕은 기존의 고딕 서체에 비해 초성 꼭지나 중성 곁줄기를 더 부각해 판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 되었다. 

자료 출처: <KoddiUD 온고딕 서체 활용 매뉴얼>, 한국장애인개발원

KoddiUD 온고딕 서체 둘러보기 및 다운로드


최소의 존엄을 위한 공간&주거 환경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난민을 위한 임시 보호소

우크라이나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 발벡 뷰로(Balbek Bureau)는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을 위해 새로운 형태의 난민 보호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리:우크라이나 하우징(RE:UKRAINE HOUSING)’은 잠시 머무는 보호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주거 기능과 역할에 주목했다. ‘품위 있는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임시 거주지에서도 평범하고 건강한 생활 방식과 적절한 조건을 보장하는 데 집중한 것. 쉽고 빠르게 완성할 수 있는 모듈형 건축 디자인으로 구성했으며, 유연한가변성이 특징으로 목재 프레임을 기본으로 한 유닛은 필요에 따라 내부 공간을 다양하게 꾸밀 수 있고 2층 구조로 쌓아 확장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안전에만 치중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최소의 기본권을 위해 소통을 위한 휴식공간은 물론 놀이터와 위생시설, 주방, 탁아실, 세탁실과 같은 편의시설까지 갖췄다.

 

목재 프레임을 기본으로 다양한 섹션 및 볼륨으로 건물의 그리드를 조정할 수 있는 리:우크라이나 하우징 프로젝트.

목재 프레임을 기본으로 다양한 섹션 및 볼륨으로 건물의 그리드를 조정할 수 있는 리:우크라이나 하우징 프로젝트. 자료 출처: 발벡 뷰로 홈페이지 


프로젝트 구현 비용은 m2 당 약 350~550 달러로 예산과 자원 규모에 따라 520개부터 8,220개의 레지던스를 구축할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발벡 뷰로는 난민 임시보호소 프로젝트 ‘리:우크라이나 하우징’을 시작으로 폭격으로 파괴된 마을을 재건하는 ‘리:우크라이나 빌리지(RE:UKRAINE VILLAGE) 프로젝트, 우크라이나의 주요 기념물을 보호하는 ‘리:우크라이나 모뉴먼트(RE:UKRAINE MONUMENT)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일상과 문화를 지키고 가꾸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발벡 뷰로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개인의 심리 상태를 고려해 임시 보호소 내 휴식과 소통이 가능한 공용 공간, 광장 등을 마련했다.

발벡 뷰로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개인의 심리 상태를 고려해 임시 보호소 내 휴식과 소통이 가능한 공용 공간, 광장 등을 마련했다. 

사진 출처: 발벡 뷰로 홈페이지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 역시 임시적,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난민을 위해 안전한 주거 공간 및 환경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가 이끄는 비영리단체인 자발적 건축가 네트워크(VAN)는 우크라이나 난민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골판지 기둥과 천막 등 현지 재료를 사용해 신속하게만들 수 있도록 설계된 종이 파티션 시스템 ‘PPS(Paper Partition System)’을 폴란드와 프랑스 등 각국에 제공하고 있다. 1994년 르완다 내전 당시, 난민 200만명이 발생하자 유엔난민기구(UNHCR)와 협력해 골판지로 임시 거처를 제작한 반 시게루는 이후, 세계 재난 지역에 임시 주거 프로젝트를 지원해오고 있다. 종이 소재를 활용한 PPS는 현장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고 제작이 쉽고 단순하며, 재사용·재활용도 가능하다. 저렴하고 내구성이 강하며, 운반이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프랑스 체육관에 임시로 마련된 PPS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프랑스 체육관에 임시로 마련된 PPS . 사진 출처: 자발적 건축가 네트워크(VAN) 홈페이지

 

2.2m×2.2m 크기의 PPS는 종이 기둥으로 지지대를 만들고 사방으로 천만 두르면 돼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다.

2.2m×2.2m 크기의 PPS는 종이 기둥으로 지지대를 만들고 사방으로 천만 두르면 돼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다. 

사진 출처: 자발적 건축가 네트워크(VAN) 홈페이지


노숙자를 위한 유쾌한 임시 거처

LA 다운타운의 스키드 로우에는 약 2000명의 홈리스가 살고 있다. 저성장과 팬데믹 상황까지 겹치면서 그 인구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LA시는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노숙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레어러 아키텍츠(Lehrer Architect)와 손잡고 ‘타이니 홈 빌리지(Tiny Homes Village)’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방치되어 있던 자투리땅 위에 노숙자를 위한 조립식 주택 타운을 조성한 것. 팔렛(pallet)을 이용한 주택은 FRP 패널과 알루미늄을 골조로 내구성이 우수하고 약 40회 이상의 재조립이 가능해 단시간에 쾌적하고 아늑한 보금자리를 구현할 수 있다. 해체와 조립이 용이해 유사 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약 5.6 m2 (1.7평)의 초소형 쉘터지만 냉난방은 기본, 간단한 침구와 보안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독채로 구성돼 사생활 보호는 물론 가족 단위의 생활도 가능하고 휠체어 사용이 가능한 공간도 별도로 준비되어 있다. 또한 노숙자의 거주지라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 페인팅을 적극 활용해 활기차고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로 생기 넘치는 공간을 완성한 점도 이채롭다. 타이니 홈 빌리지는 나아가 하나의 임시 거처로써 뿐만 아니라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징검다리 역할도 겸한다. 직업 안내와 심리 치료 서비스를 병행해 노숙자의 자립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화사한 컬러 팔레트로 유쾌한 인상을 주는 타이니 홈 빌리지. 그래픽과 패턴으로 개인과 공용 공간을 구분했다.

화사한 컬러 팔레트로 유쾌한 인상을 주는 타이니 홈 빌리지. 그래픽과 패턴으로 개인과 공용 공간을 구분했다. 사진 출처: 레어러 아키텍츠


모두가 평등하게, 접근성과 사용성을 높인 제품

왼손잡이도 문제 없어, 양손형 가위 

일본의 디자인 문구 브랜드 크래프트 디자인 테크놀로지(CDT)의 가위는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구분이 따로 없어 양손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날렵한 디자인이 특징으로 스테인레스 스틸로 제작해 견고하며 날과 그립의 일체 구조로 손쉽게 사용 가능하다. ‘실용적인 아름다움’이라는 브랜드 모토에 걸맞게 기성 문구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해 도입한 기술력과 모던한 디자인을 결합시켜 다양한 사용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 

 

양손 모두 사용 가능한 가위.

양손 모두 사용 가능한 가위. 사진 출처: 크래프트 디자인 테크놀로지 홈페이지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 간편한 정수 필터 

<UN 세계 물 개발 보고서>(2023)에 따르면 2020년 기준 20억명에 달하는 인구가 대소변으로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은 보다 가속화돼 2050년에는 50억명이 물 부족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스튜디오 포더매니(Studio Forthemany)의 휴대용 정수 필터 디스펜서 ‘제리(Jerry)’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에 거주하는 이들이나 난민이 보다 쉽게 깨끗한 물에 접근할 권리를 위해 개발되었다. 

대부분의 정수 필터가 저장 장치를 포함하거나 대형 탱크에 통합되어 있는 반면, 제리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물통에 장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펌프로 물을 끌어올릴 때마다 필터로 불순물이 자동으로 걸러지는 구조로 사용자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어린이부터 노약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약 3번의 펌핑으로 한 잔의 물을 채울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으며 직관적인 사용법으로 설명서나 지침 없이 단 30초 이내에 필터를 올바르게 설치하고 사용할 수 있다. 예상 수명은 물 1만 리터 이상(5인 가족 식수 기준 약 3년)이다. 

 

복잡한 유지보수 절차를 제거해 누구나 쉽게 제품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제리.

복잡한 유지보수 절차를 제거해 누구나 쉽게 제품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제리. 사진 출처: 제리 필터  홈페이지


장애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가구 

스웨덴의 가구 브랜드 ‘릴라 엘리펀트(Lilla Elefant)’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디자인 기반의 제품을 선보인다. 릴라 엘리펀트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김예솔 스스로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제품은 군더더기 없이 쉬운 쓰임새와 미감이 특징이다. 푸드 트레이 ‘클룸피그(Klumpig)’는 휠체어를 밀며 다른 한 손으로도 다루기 쉽도록 디자인해 음식과 음료를 운반하는 데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식탁이나 책상은 휠체어 탄 사람에게는 너무 높거나 낮을 때가 많은데 이를 반영하고 다리 사이 간격도 넓혔다. 커피 테이블 풀문(Fullmåne)은 보통 4개인 테이블 다리를 3개로 줄이고 간격을 넓혀, 휠체어 바퀴가 걸리는 문제를 개선한 점이 돋보인다. 

 

사용자의 일상과 니즈를 고려해 디자인한 푸드 트레이 클룸피그와 테이블 풀문.

사용자의 일상과 니즈를 고려해 디자인한 푸드 트레이 클룸피그와 테이블 풀문. 사진 출처: 김예솔 홈페이지  

클룸피크와 풀문 사용 모습 보기 



글: 홍지은, 담당: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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