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모든 이에게 공정한 정보 전달을 위한 디자인
작성일:
2023-07-24
작성자:
소식지관리자
조회수:
1225

[기획] 공공 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 방법, 색채디자인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33호(202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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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선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 이사장이 전하는

모든 이에게 공정한 정보 전달을 위한 디자인


색채디자인이란 색채를 중심에 두고 환경 또는 제품을 기획, 개발, 관리하며 색채의 심리적, 물리적 효과 및 기능을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색채는 언어를 모르는 어린이나 외국인에게도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시각 언어이기에 모든 사람을 위한 매체로 활용되기에 용이하다. 공공디자인에서 색채가 잘못 설계되면 주변 환경 시설에 대한 인지성, 접근성, 심미성이 떨어지며 특히 안전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자칫 큰 사고로 연결될 수도 있기에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이에 공공디자인에서 색채는 어떤 역할을 하며 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의 박연선 이사장에게 자세히 물었다. 


공공디자인과 색채디자인

공공디자인과 색채디자인은 떼레야 뗄 수 없다. 하지만 국내에서 색채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특히 공공디자인에서 색채는 안전성과 직결되어 있어 중요하다. 짧은 시간 안에 정보를 파악하거나 순간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 문자로 쓰인 안내문을 읽기 보다 색채를 통한 경고가 더 효과적이다. 더욱이 한글을 잘 모르는 어린이나 다문화 가족, 외국인 등을 고려한다면 색채를 통한 경고 메시지는 더 중요해진다. 

공공디자인에서 색채를 활용하고자 한다면 컬러유니버설디자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이란 장애의 유무나 연령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이 제품, 건축, 환경, 서비스 등을 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인간이 색을 인식하는 방법은 개인마다 지닌 유전자의 특성이나 다양한 눈의 질환에 따라 다르므로, 다양한 색각을 가진 사람을 배려하고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면 이용자의 관점에서 만든 색채디자인이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공공시설물이나 환경을 기획할 때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이 기본적으로 적용되며 일본은 중앙정부와 22개 지자체에서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을 따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우리나라는 2014년에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가 설립되며 본격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는데, 아직 이에 대한 정부나 실무자들의 인식이 부족해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색약자를 장애인이라 인식하고 드러내지 않으려는 한국인의 특성이 반영되어 연구가 더디게 진행되는 배경이 뒤따르고 있기도 하다. 한국인 남성의 약 6%가 색약자로 통계되고 있는데, 이들은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부끄러워하고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선천적 색약자뿐 아니라 고령이 될 수록 노화에 따른 색지각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초고령사회를 준비하는 지금 공공디자인에서 색채의 중요성을 계속 간과한다면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활의 불편을 겪게 될 것이고 여러 안전사고에 노출될 것이다. 

 


수정체의 황변에 따른 시각 차이.

수정체의 황변에 따른 시각 차이. 이미지 출처: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 홈페이지



일반 색각자와 색약자의 시각 차이. 왼쪽부터 일반색각자, 적색약자, 녹색약자가 보는 색.

일반 색각자와 색약자의 시각 차이. 왼쪽부터 일반색각자, 적색약자, 녹색약자가 보는 색. 이미지 출처: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 홈페이지


한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안전디자인 가이드라인.

한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안전디자인 가이드라인. 이미지 출처: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 홈페이지


모두를 위한 색채디자인

유럽의 남성 색약자는 한국인보다 더 많은 약 10% 이상이 해당된다. 그래서 색약자에 대한 배려가 일상에서 당연시 되고 있으며 여러 분야에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되고 있다. 대중 스포츠 중 하나인 축구를 예로 들어보자. 색약자 또는 흑백TV를 통해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을 위해 FIFA는 각 나라별 선수들의 유니폼과 잔디를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색채를 규정하고 있다. 관중은 물론 심판도 헷갈릴 수 있어 두 팀이 같은 색깔의 유니폼을 입을 수 없다. 그래서 각 팀은 주 유니폼과 보조 유니폼을 함께 준비해 유니폼 색깔이 같은 두 팀이 맞붙을 경우 대진표에 따라 유니폼 선택의 우선권을 주고 색을 정한다. 각 팀의 유니폼 색이 다르다 해도 명도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 때도 유니폼을 바꿔야 한다. 또한 잔디와 유니폼의 명도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도 바꿔야 한다. 색의 밝기 또는 명도를 통해서만 색을 구분하는 색약자들은 유니폼 색의 명도 차가 작으면 팀을 구분하기 쉽지 않고 저개발국에는 아직 흑백TV 시청자가 많기에 명도의 차이 또한 확실하게 할 것을 규정한다. 이처럼 국제 연맹 또는 유럽, 미국이 주로 이끄는 사업에는 모두를 위한 색채디자인이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유니버설디자인을 마을 전체에 적용한 핀란드의 마르얄라(Marjala) 마을의 도로는 색채와 명도만으로 횡단보도와 인도 등을 구분 지었고 미국 미시간 주의 YMCA는 2015년  세계유니버설디자인위원회에서 인증 받은 건축물로 설계 단계부터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을 기반으로 실내를 디자인했다. 휠체어, 유모차 등을 이용하는 사람도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바닥을 디자인하고 벽과 바닥의 색상과 명도 차이를 확실하게 해 색약자도 공간을 쉽게 구분하고 인지하도록 했다. 공간의 기능에 따라 어울리는 색을 선정해 에너지와 기분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심리적 요인 또한 고려한 것이 특징이다.

 

색약자를 위한 FIFA의 유니폼 색채 규정 예시. 왼쪽부터 일반 색각자가 본 유니폼 컬러, 녹색맹, 적색맹, 청색맹이 본 유니폼 컬러.

색약자를 위한 FIFA의 유니폼 색채 규정 예시. 왼쪽부터 일반 색각자가 본 유니폼 컬러, 녹색맹, 적색맹, 청색맹이 본 유니폼 컬러. 사진 출처: 세계일보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한 핀란드의 마르얄라 마을은 색채를 활용해 보행자와 차도를 구분 짓고 있다.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한 핀란드의 마르얄라 마을은 색채를 활용해 보행자와 차도를 구분 짓고 있다. 

사진 제공: 박연선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 이사장

 

설립 단계부터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을 기반으로 디자인한 미국 미시간주의 YMCA 인테리어.

설립 단계부터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을 기반으로 디자인한 미국 미시간주의 YMCA 인테리어. 사진 제공: 박연선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 이사장


왼쪽부터 일반 색각자가 본 지구본, 색약자의 시선에서 본 지구본,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해 명도 차이를 더해 디자인한 지구본.

왼쪽부터 일반 색각자가 본 지구본, 색약자의 시선에서 본 지구본,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해 명도 차이를 더해 디자인한 지구본. 

이미지 출처: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 홈페이지


색채를 통한 환경 개선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공공디자인 안에서 색채가 주는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미미하긴 하지만 최근 기업들의 ESG 경영 활동을 통해 색채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추세다. 색채디자인을 활용한 환경 개선이 시설을 새롭게 개발하고 만드는 것보다 저비용 고효율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와 LH주택공사가 협업해 개발한 공공주택을 위한 색채디자인이 대표적이다. 고령 인구가 많이 거주하는 수원 호매실 4단지 국민 임대를 대상으로 주동 내외부, 동 출입구, 부대복리시설, 안내표지판 등에 컬러유니버설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적용했다. 안전사고가 다수 발생하는 지하주차장 차량 교차로와 보행자 동선 및 비상벨 표기에 색채디자인을 적용해 입주자의 안전을 강화했다. 고령화에 따라 색채 지각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주변 환경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해 생길 수 있는 혼동과 사고 발생을 색채를 통해 예방한 것이다. 

 

LH주택공사의 컬러유니버설디자인 적용 사례.

LH주택공사의 컬러유니버설디자인 적용 사례. 사진 출처: LH주택공사 공식 블로그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는 2021년 삼화페인트와 함께 ‘모두를 위한 환경색채 삼화 컬러유니버설디자인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기도 했다. 전국 행정구역별 규정과 경관 계획, 도시 색채를 조사하고 지역별 상징색과 색채 특징 및 특성, 운영방안 등을 분석해 데이터화 했다. 특히 배색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색채 사용 접근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누구나 편리하게 다양한 공간에 배색 팔레트를 활용해 편의성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까지 고려한 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삼화페인트가 개발한 장애인복지시설을 위한 컬러 가이드라인.

삼화페인트가 개발한 장애인복지시설을 위한 컬러 가이드라인. 이미지 출처: 삼화페인트 홈페이지


삼화페인트의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한 인테리어.]

삼화페인트의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한 인테리어. 사진 출처: 삼화페인트 홈페이지


이처럼 색채디자인을 공간이나 시설물, 제품 등에 적용해 환경을 개선하는 것뿐 아니라 지역의 이미지를 디자인하거나 생활 속에서도 소소하게 색을 통한 배려를 실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흰 접시에 흰색의 음식을 담으면 고령자나 시력이 나쁜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으므로 어두운 색의 접시를 사용하길 권한다. 바다, 산 등 경관의 특징을 고려해 주변 환경의 주조색과 채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바다 색이 탁해 보일 수도, 산이 더 푸르게 보일 수도 있기에 지자체는 환경 색채디자인을 기획할 때 더 세심하게 색채 팔레트를 연구해야 한다. 색채는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게 하고 인상을 남기게 하는 마법 같은 디자인이다. 이 마법의 디자인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나이, 국적 불문하고 누구나 공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하려면 공공디자인에서 더욱 색채디자인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이: 박연선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 이사장, 구술 정리: 박은영


전문가 칼럼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박연선 이사장은 홍익대학교 조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홍익대 색채디자인 연구센터 소장, 한국색채학회 회장을 지냈다. 2014년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를 설립해 고령자, 색약자 등 시각인지약자를 배려하는 공공디자인을 위한 색채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리는 다양한 교육 및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www.kcu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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