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공공 공간이 물들자 도시가 떴다
작성일:
2023-07-24
작성자:
소식지관리자
조회수:
1139

[기획] 색채디자인을 통한 생활의 편리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33호(2023. 08)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공공 공간이 물들자 도시가 떴다


이혜주 중앙대학교 교수의 <도시브랜드 활성화를 위한 도시색채디자인에 관한 연구>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특히 사람이 물체를 보았을 때 자극의 강도는 최초에 색채가 80%, 형태가 20%로 색채의 자극은 형태보다 강하여 도시 전체 이미지는 형태에 앞서 색채에 의해 좌우된다.” 그래서 황폐해져 가는 도시의 슬럼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또 세계의 여러 도시 속에서 돋보이는 위치를 갖기 위해 각 도시는 자신만의 옷을 입으려고 한다. <색이 만드는 미래> 책에서는 '20세기가 과학기술과 형(形) 중심의 세기였다면 새로운 세기는 인간 환경과 색(色)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도시 여행자들의 발길을 불러들이는 국내외 도시색채디자인 사례의 계기와 성과를 모았다. 중요한 건 이들 모두 1년 안팎의 사업 하나만으로 마침표를 찍으려고 하지 않았다. 도시란 변하는 데 오래 걸리는 대상이기에 서서히 물들이겠다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도시를 인식하는 이미지의 8할을 색채가 결정한다고 하니 색채도시디자인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도시를 인식하는 이미지의 8할을 색채가 결정한다고 하니 색채도시디자인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사진 출처: 어도비스톡


색채 디자인 및 컬러링 시범사업 선보인 인천광역시

인천광역시는 원도심의 슬럼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낙후하고 칙칙한 공업 도시란 이미지 또한 반드시 해소해야 할 무엇이었다. 다른 지역은 인구절벽에 머리를 쥐어 싸매는데 지자체 중 인구 증가율 1위, 인구 300만 명을 목전에 앞두고 있으니 바뀔 타이밍은 분명했다. 이에 2017년 인천광역시가 뽑아 든 칼이 색채 디자인 및 컬러링 시범사업이었다. 시민이 변화를 바로 느낄 수 있고, 브랜딩 차원에서 새로운 물꼬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이었다. 전문성을 위해 노루페인트와 협약을 체결했고, 김윤선디자인과 연구 사업을 추진했다.

2018년 4월 인천 대표 환경 10색(인천바다색, 정서진석양색, 소래습지안개색, 개항장벽돌색, 팔미도등대백색 등)을 발표했고, 공사가림막, 교각 등을 물들였다. 인천 대표색을 활용해 중구 만석고가교, 미추홀구 숭의평화시장 등 원도심 환경개선 사업도 진행했다.  '풍경이 아름다운 섬'이라는 주제에 맞춰 강화군·옹진군 등의 3개 마을에서 지붕 색채 작업도 했으며 원도심 골목 등 교통 취약 지역을 운행하는 인천이음버스의 색상도 노약자와 색약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올리브그린으로 바꿨다.

이후 2018년 11월 열린 인천 컬러데이 행사에서는 시민, 공무원, 대학생을 대상으로 퍼스널 컬러 교육과 스톱모션 워크숍을 진행했으며, 제6차 OECD 세계포럼이 열린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는 전시를 열어 인천 색을 홍보했다. 같은 해 한국색채대상 한국색채학회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도 도시, 교통, 문화, 관광 전 분야에 걸쳐 더욱 인천색 활용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인천 대표 환경 10색은 시 곳곳의 공공시설물의 표면에 입혀지고 있다.

인천 대표 환경 10색은 시 곳곳의 공공시설물의 표면에 입혀지고 있다. 사진 출처: 인천시 공식 홈페이지


컬러빌리지 조성사업 선보인 여수시

“24시간 아름다운 브랜드 경관 창출로 도시 경쟁력 제고.” 여수시 컬러빌리지 조성사업의 추진 배경 속 한 구절이다.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하나의 브랜드로서 기억에 남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바람이었다. 

여수시 컬러빌리지 조성사업은 2016년 추진 계획을 수립한 뒤 2017년부터 2018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원도심인 중앙동 고소천사벽화마을 및 종화동 자산마을 일원을 ‘낮에는 색, 밤에는 빛’이란 콘셉트로 바꾸는 일로, 세부적으로는 옹벽과 비탈면 개선 및 도색, 공동 및 단독주택 지붕, 벽면 도색이 세부 전략으로 정해졌다. 색은 동백꽃 색을 바탕으로 파스텔 톤으로 맞췄다. 주민의 사유재산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만큼 설명회와 워크숍, 시행 과정에서 주민참여감독제도도 시행했다.

2018년 4월 한신아파트 외벽도장 공사를 끝으로 컬러빌리지는 제 모습을 완벽히 드러냈다. 여수 해상케이블카에서 컬러빌리지를 내려다보면 마치 동백꽃이 피어나는 모습과 같다하여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탔다. 2017년 전라남도 좋은경관만들기추진단이 선정하는 그해 우수 프로젝트로 인정받았다.

 

컬러빌리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관광지인 돌산공원, 해상케이블카, 남산공원, 돌산대교를 의식하며 디자인했다

컬러빌리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관광지인 돌산공원, 해상케이블카, 남산공원, 돌산대교를 의식하며 디자인했다. 사진 출처: 여수시


퍼플섬 사업으로 유명한 신안

2022년 기준 인구 143명이 거주하는 반월도와 박지도, 이곳에 같은 해에 38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면 믿어지는가. 바로 신안군 퍼플섬의 이야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대표 관광지 100선 중 하나, 유엔세계관광기구 총회가 선정한 ‘제1회 유엔세계최우수관광마을’이기도 하다.

신안군이 지붕과 벽에 보라색을 칠한 건 인구 고령화로 나이 들어가는 섬에 새로운 전환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서 지원한 ‘2015년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이 발단이었다. 마침 보라색 꽃을 피우는 참도라지가 밭이 많았고, 콜라비나 꿀풀도 보랏빛이었다. 그러면서 아예 민가 지붕 개량 공사를 추진하던 2019년 본격적으로 보라색 채색에 나섰다. 2008년 완공해 노후화된 ‘소망의 다리’를 보라색으로 보완하며 ‘퍼플교’라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현재 식당 메뉴판, 정자, 공중전화부스, 카페 등 모든 것이 보라색이다. 도로 분리대와 분리수거 박스까지도 보라색으로 덮여 있으며, 주민들 역시 보라색 옷을 맞춰 입고 나와 보라색 콜라비를 관광상품으로 판다. 보라색 하나가 새로운 활력 없이 가물어 가던 반월도와 박지도를 ‘퍼플섬’으로 만들며 전 세계에서 꼭 가야 할 장소로 불리고 있다. 도시 브랜딩에서 색의 힘이 이토록 세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퍼플교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언덕에는 보라색 바들마편초 2000만 송이를 심었다.

퍼플교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언덕에는 보라색 바들마편초 2000만 송이를 심었다. 사진 출처: 신안군


색채로 범죄 발생률을 줄인 멕시코 파추카의 팔미타스 마을

이웃 간의 크고 작은 다툼이 벌어지고 골목 구석구석이 슬럼화되어 간다면 당신은 어떠한 해결책을 떠올릴 것인가. 벽화가와 거리 예술가로 구성된 게르멘 크루는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동네에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 붓을 들었다. 그리고 좁고 가파른 길을 따라 뿌리 내린 200여 채의 주택 벽과 지붕에 약 6000평 정도 크기의 패턴을 그렸다. 마치 거대한 대지 미술처럼 멕시코의 강렬한 태양 빛을 반기듯 높은 채도의 쨍한 색을 마을에 입힌 것이다. 

게르멘 크루는 10년 넘도록 지역 공동체를 강화하고 청소년들이 멕시코에 만연한 범죄조직에 가담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몰두한 디자인 집단이다. 이들은 이 도시 파추카의 별명이기도 한 ‘바람의 도시’를 콘셉트로 바람에 경의를 표한다는 뜻을 벽화에 담아냈다. 

외신에 따르면 색을 입은 이후 팔미타스 마을은 한층 건강해졌다. 밤에도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젊은이들 사이의 다툼 또는 폭력이 사라졌고 관광객이 늘면서 각종 일자리가 창출되었다고 한다. 

 

도시색채디자인은 도시의 사회 문제를 줄이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

도시색채디자인은 도시의 사회 문제를 줄이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 사진 출처: 어도비스톡


도시 자체가 브랜드, 스페인 포르투의 포르투닷 

포르투갈의 제2의 도시라 불리는 포르투는 2014년부터 적극적으로 브랜딩을 펼치는 도시 중 하나다. 정부가 디자인 전문 기업 화이트스튜디오와 협업해 색채디자인부터 로고, 사이니지, 애플리케이션 등을 도시 브랜딩이란 목적 하에 추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화이트스튜디오는 포르투를 기반으로 런던, 룩셈부르크, 산티아고,  칠레 등지에서 활동하는 종합디자인스튜디오다.

포르투닷의 주색은 파랑색, 보조색은 흰색이다. 여기에 고딕 계열의 단단한 알파벳, 또는 선명한 선 한 줄기만으로 내용을 그려낸다. 파란색은 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법인 아줄레주에서 힌트를 얻었고, 그래픽은 포르투 시민에게 “당신에게 포르투란 무엇입니까?’의 답으로 얻은 트램, 도루강, 포트와인 등이라고 한다. 

역사·문화적 자산을 오늘날의 이미지로 업데이트한 시도는 그야말로 제대로 세계에서 인정받았다. 리브랜딩 이후 관광객 한 사람의 평균 소비가 1년 만에 약 2배 가까이 뛰었으며 2015년부터는 글로벌 도시 보고서의 도시 경쟁력 지수 순위권에 진입하기도 했다. 물론 우수한 도시 브랜딩 사례로 늘 언급되는 건 기본이다.


포르투 시내 어디서나 ‘포르투닷’ 브랜딩 결과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포르투 시내 어디서나 ‘포르투닷’ 브랜딩 결과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진 출처: 화이트스튜디오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든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워터워크

색을 활용한 도시 브랜딩을 작게 시도해보고 싶다면 아스팔트 아트 이니셔티브의 일환인 워터워크 프로젝트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스코틀랜드 예술가 가브리엘 마셀라가 글래스고 시의회와 엔지니어와 협력해 시민들의 주요 통근 허브이자 자전거 운전자, 보행자의 교차점인 지하철역 입구에 색을 입힌 사례다. 마침 유엔의 연례행사가 시에서 있을 예정이었기에 공공시설물인 벤치, 안내판 등을 포함해 공공 공간을 개선할 타이밍과 잘 맞았다. 바닥과 교각에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갖가지 페인트를 칠해 환경을 개선하는 것뿐 아니라 상부 도로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깔때기처럼 받아내어 토착종을 보호하고 우천 시 범람 횟수를 줄이는 빗물 정원 시스템도 설치했다. 

기후변화에 해로운 영향을 줄이겠다는 글래스고의 의지가 만든 프로젝트였다. 글래스고의 엔지니어 이슬라 잭슨의 설명은 이 색채디자인 프로젝트에 담긴 의미를 잘 설명해준다. “색채디자인은 적은 비용으로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에게 공공 공간을 친숙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일로, 차 밖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회색빛 아스팔트에 색과 패턴을 입혀 공공공간에 활기를 입혔다.

회색빛 아스팔트에 색과 패턴을 입혀 공공공간에 활기를 입혔다. 사진 출처: 블룸버그 필란트로피



글: 윤솔희, 담당: 박은영


빠른 이동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