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작성일:
- 2024-11-06
- 작성자:
- 문한아
- 조회수:
- 1170
[기획] 세대, 지역, 문화를 포용하는 공공디자인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48호(202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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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공공디자인 토론회⟫ 다시 보기
모두를 포용하는 공공디자인의 조건
지난 10월 30일, 옛 충남도청사(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2024 공공디자인 토론회⟫가 열렸다. 1930년대에 건축된 근대문화유산의 고풍스러움이 가득한 장소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는 ‘지역사회를 위한 포용적 디자인’이라는 주제 아래 국내외 공공디자인 전문가들이 자리했다. 지역성의 소멸과 인구 감소, 지역 상생이 갈수록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금, 연사로 나선 전문가 15명의 발표는 온·오프라인으로 토론회를 지켜 본 참석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2024 공공디자인 토론회⟫가 열린 대전 옛 충남도청사(대전근현대사전시관)(위)와 토론회에 참석한 청중들의 모습(아래)
세션 1. 회복력 있는 도시의 조건
“지역의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복합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도시를 회복시키기 위해 공공디자인 전문가와 디자이너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첫 번째 세션의 주제 발제를 맡은 ‘아틀리에 오이Atelier oï’의 파트리크 레몽Patrick Reymond은 지역이 처한 상황과 주변 환경, 주민의 요구를 면밀히 파악하고 그 지역만의 특수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틀리에 오이는 현재 NGO 단체인 ‘스마일링 겍코Smiling Gecko’와 소말리아 프놈펜 지역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아틀리에 오이는 프놈펜 지역의 도시 설계는 물론, 그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건물을 짓는다. 낙후 지역의 주민들이 마을을 가꿔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프로젝트인 만큼,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협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파트리크 레몽 Patrick Reymond 아틀리에 오이atelier oï 공동설립자
아틀리에 오이Atelier oï’ X 스마일링 겍코Smiling Gecko 소말리아 프놈펜 프로젝트
두 번째 연사는 부천시 ‘산업단지 근로자를 위한 멘탈케어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주하나 PSDI 소장이었다. 주 소장은 오감을 자극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공 공간을 통해 근로자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멘탈케어 디자인’의 개념과 진행 과정, 효과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 최정우 울산대학교 교수가 ‘북아현동 경사형 엘리베이터 공공프로젝트’를 진행한 과정을 발표했다. 최 교수는 이 엘리베이터를 통해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는 동시에 세련되고 극대화된 탑승 경험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진행 시 마주하는 제약을 돌파하는 방법은 “디자이너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그를 지지하는 지자체의 도움”이라고 덧붙였다.
부천시 ‘멘탈케어 디자인 프로젝트’ - 주하나 PSDI 심리사회 디자인연구소 소장
‘북아현동 경사형 엘리베이터’ - 최정우 울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주민 생활 밀착형 공공디자인 우수 사례로 꼽히는 ‘성동형 스마트 쉼터’를 발표한 이정희 서울 성동구 국장은 성공적인 프로젝트의 이유로 지역 특성을 면밀히 파악한 과정과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들었다. 주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10여 가지 첨단 시스템을 결합한 스마트 쉼터를 도입한 결과, 성동구는 실제로 5대 범죄율이 낮아졌고 96% 이상의 주민 만족도를 얻을 수 있었다. 이어진 사례는 현대면세점의 ESG 공공디자인으로, 노영호 현대백화점면세점 차장이 발표했다. 현대면세점 동대문점에 구현된 ‘에이치그램H-Gram’ 프로젝트는 나이, 성별, 국적이 다양한 고객들을 위해 개발한 디자인 시스템으로, 기업이 공공디자인으로 사회에 공헌할 방법을 제시한 사례다.
‘성동형 스마트 쉼터’ - 이정희 성동구 복지국 국장
홍익대학교 공공디자인연구센터가 협력한 ‘현대면세점 H-gram’ - 노영호 현대백화점면세점 디자인파트 차장
세션 2. 인구 감소 시대를 준비하는 디자인
“이제 사회는 성장이 아닌 감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두 번째 세션은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인 인구 감소와 그를 대처하는 디자인 사고와 태도에 관해 다뤘다. 주제 발제는 사회혁신 디자인 분야의 대가인 에치오 만치니Ezio Manzini 교수가 맡았다. 만치니 교수는 인구 감소라는 주제가 익숙하지는 않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까지 성장에만 초점을 맞춰 온 사회가 인구 감소를 예상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쓴다는 의미이므로 시행착오가 많을 거라고 덧붙였다. 만치니 교수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고령화, 저출산, 지역 소멸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의 노력과 함께 현 실정에 맞는 사회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치오 만치니 Ezio Manzini 데시스 네트워크Desis Network 대표
이후에는 인구 감소가 초래한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공공디자인 사례와 현 상황을 분석한 전문가의 발표가 이어졌다. 작은 도서관 붐을 일으켰던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진행했던 김병옥 기용건축 대표는 지역 소멸을 대하는 건축가의 자세에 대해 말했다. 전경희 한국철도공사 실장은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철도역에서 디자인 콘텐츠를 찾아내는 방법과 폐역사를 추억의 공간으로 변화시켜 다시금 생명력을 부여한 과정을 설명하며 발표를 이어갔다.
‘순천 기적의도서관’ – 김병옥 기용건축 대표
구 컨벤션 웨딩홀을 리뉴얼한 ‘오송역 코레일 라운지’ - 전경희 한국철도공사 디자인실 실장
고령화와 농촌이라는 지역의 오래된 문제를 연구한 전문가들의 연구 내용도 들을 수 있었다.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고령화 현실과 이에 대응한 고려 사항을 분석해 고령화 관련 정책과 디자인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이야기를 전했다. 다음으로 발표한 조호영 한국농어촌공사 차장은 농촌 공간의 재구조화를 다뤘다. 농촌 환경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지금까지의 농촌 공간 디자인의 문제점을 밝히고 해외 성공 사례와 함께 한국농어촌공사가 제작한 가이드라인을 예로 들며 앞으로 농촌 공간 디자인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왼쪽부터)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 조호영 한국농어촌공사 농촌공간디자인부 차장
세션 3 – 지역 상생, 지속 가능한 미래
“공공디자인은 만드는 사람이 같은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세 번째 세션에서는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4⟫의 지역협력도시인 대전의 로컬 브랜드 및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지역 상생 디자인의 조건을 살펴봤다. 주제 발제는 뼈아픈 이야기로 시작했다. 최성호 (사)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은 대전의 공공디자인 현주소를 다루며 부족한 점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안했다. 또한, 유행어처럼 자주 언급되는 ‘로컬 브랜드’의 폐해를 짚었다. 그리고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동네 상권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며, 그를 활성화하고 다음 단계로 발전시켜 줄 지자체 및 주민의 투자가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최성호 (사)한국공공디자인학회 학회장
대전의 도시재생 사례가 이어서 등장했다. 정태일 관사마을㈜ 대표는 최근 다시 힘을 얻고 있는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의 역사와 앞으로의 계획을 발표했다. 한때 민간 도시재생을 추진하여 주목받았던 철도관사촌은 문제점을 재고한 후, ‘문화 재생 클러스터 마스터플랜’을 실시해 소제동 주민과 그 밖의 이해관계자의 거버넌스 구축에 힘쓰고 있다. 이정훈 대전디자인진흥원 실장은 대전 도시재생의 또 다른 사례로, 대청호라는 생태 환경, 학교에 서린 주민들의 추억, 지역 문화를 아울러 조성한 생태 놀이터 ‘효평마루’를 발표했다. 폐교를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즐기고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효평마루 브랜드를 개발하는 등 지역의 오래된 공간을 지속 가능성을 지닌 곳으로 만든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왼쪽부터) 정태일 관사마을(주) 대표, 이정훈 대전디자인진흥원 도시디자인실 실장
(왼쪽부터) 대전 효평마루, 당진군 매산2리 마을회관
이어진 발표에서는 충청 지역의 지역 상생 사례가 소개되었다. 전(前) 당진시 총괄 건축가인 차주영 건축가는 당진시의 작은 마을, 매산2리 마을회관 리모델링 사례를 발표했다. 마을회관이면서 동네 사랑방이자 공동거주 주택 역할도 수행한 이 공간은 주민의 적극적인 의지와 참여로 진행되었다. 다만, 완공 이후 계획과 다르게 운영된 것에 대해 차 건축가는 “공공디자인의 성공에는 만드는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처음 목표를 유지하는 노력도 포함된다.”라고 말했다. 오병찬 충남공공디자인센터 센터장은 지역 개발 디자인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발전된 공공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충남공공디자인센터의 노력을 보여줬다. 오 센터장은 주민 중심의 거버넌스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주민 중심의 문제 발굴과 주민 참여 유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차주영 前 당진시 총괄건축가, 오병찬 충남연구원 공공디자인센터 센터장
종합 토론. 지역사회를 위한 포용적 디자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디자인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토론회의 마지막 순서인 종합 토론에서는 연사로 참여한 서울 성동구 이정희 국장, 충남공공디자인센터 오병찬 센터장을 비롯해 건축공간연구원 오성훈 선임연구위원, 목원대학교 송현지 교수가 참여했다. 각 패널은 여러 질문에 답하며 각자의 생각을 공유했다. 올해 토론회를 정리한 마지막 질문으로, 담론의 여지를 남긴 ‘지역 활성화를 위한 포용적 디자인의 조건’에 대한 각 패널의 답변을 아래와 같이 옮긴다.
이정희 국장 공공디자인에는 장, 단점이 공존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근거로 관계자와 주민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명확한 수치를 보여줬을 때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오병찬 센터장 행정에는 시스템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자주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생기는 빈 곳을 주민이 채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성훈 연구위원 로컬 디자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에 어떤 가치를 줄 것인지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 지역에 관한 자기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송현지 교수 포용적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배제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질문에 대한 각 패널의 답변은 달랐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지역 디자인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주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관계자와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유연하고 탄력적인 디자인을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2024 공공디자인 토론회⟫는 이 외에도 지역 사회를 위한 공공디자인에 관한 여러 가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공디자인의 역할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정책 관계자와 전문가, 디자이너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2024 공공디자인 토론회⟫ 종합토론
글: 공공디자인 소식지 편집부
사진: (사례)각 연사 발제 내용 중 발췌, (인물)516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