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미술관에서 실천하는 탄소중립
작성일:
2024-09-04
작성자:
문한아
조회수:
4362

[기획]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공공디자인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46호(202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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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실천하는 탄소중립

-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디자이너의 역할


미술관과 박물관은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짧게는 며칠부터 몇 개월까지 일정 기간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작품 이동, 인쇄물 제작, 공간 설치, 철거 등 많은 공정을 반복해야 하고, 매 과정에서 많은 양의 폐기물과 탄소가 배출된다. 전시관의 수가 많고 규모가 클수록 공간 운영과 유지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관람객이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을 이용해 전시를 방문할 경우 이동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국내외 문화예술계에도 국공립 미술관 등을 중심으로 환경에 대한 책임과 ESG 도입이 요구되어 왔다. 2018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한 미술관, 박물관의 역할이 공식적으로 언급되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 Modern Museum’은 2019년에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하였고, 탄소 배출량 측정, 재생에너지 사용, 태양광 패널 설치, 조명기구 교체, 폐기물 최소화, 재활용 등 탄소중립을 선도적으로 실천한 바 있다. 국제 미술관 및 현대 미술 소장품 위원회(CIMAM)는 미술관의 탄소중립 실천 방안을 담은 온라인 툴킷을 제공하고 있으며, 독일연방문화재단Kulturstiftung des Bundes은 19개 지역 예술기관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네트워킹 시스템을 구축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2050 탄소중립 선언’을 발표(2020년)하고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2022년)하는 등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을 다학제적으로 탐구한 다원예술 <미술관-탄소-프로젝트(2022년)>가 대표적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러 분야 중, 시민 참여형 정책 워크숍을 기획하고 진행한 유니스트의 뉴디자인스튜디오New Design Studio(이하 “연구팀”)의 연구는 최근 국제 디자인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of Design(IJD)’에 게재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연구팀은 담론을 더욱 확장해 국립과천과학관, 예술경영지원센터와도 탄소중립 방안을 연구 중이다. 해당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은 이승호 교수를 직접 만나 탄소중립을 위한 디자인적 실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민과 함께 상상하는 미술관의 탄소중립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관-탄소-프로젝트>는 기후변화에 대한 예술계의 태도와 행동, 전략 변화를 도모하기 하여, 미술관의 활동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악영향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15개의 다원예술 프로젝트로 구성되었다. 연구팀이 맡은 분야는 ‘시민이 상상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탄소중립’ 워크숍 시리즈로,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시민 164명과 미술관 직원 10명, 미술관 재단 직원 4명이 참여했다.

 

워크숍 참여 그룹 간의 관계ㅣ출처: 뉴디자인스튜디오

 

연구팀이 워크숍을 준비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해관계자의 참여였다. 전체 프로젝트를 기획한 성용희 학예사와 연구팀은 그 중에서도 ‘어린이’에 주목했다. 태어나서부터 기후위기를 겪는 세대, 지금 탄소중립을 이야기하는 우리보다 더 오래 기후변화 속에 살아갈 세대임에도 어린이는 탄소중립 담론에서 늘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 워크숍 참여자 164명 중 어린이는 약 33%를 차지한다. 연구팀은 자칫 터무니없어 보이는 어린이들의 상상에서 키워드를 발견해 내고, 그 아이디어를 포함한 안건을 청소년-대학생-청년-장년 워크숍까지 릴레이로 이어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실천 방안으로 다듬었다.

 

<미술관-탄소-프로젝트> 어린이 워크숍ㅣ출처: 뉴디자인스튜디오

 

연구팀은 워크숍 결과가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실제 미술관 운영 전략과 연관지어 이해될 수 있도록 정책 디자인 분야에서 사용하는 도구(툴키트)*를 활용했다. 그 결과 워크숍을 통해 도출된 100개 이상의 탄소중립 아이디어를 (A)이미 잘하고 있는 것, (B)가까운 미래에 실현할 것, (C)장기적으로 고려할 사항 등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제안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 표와 같다.

*시스템으로서의 정부 툴킷Government as a System toolkit : 영국 정부의 정책 디자인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국 정책 연구소UK Policy Lab’가 개발했다. 정책 결정의 단계를 영향력, 참여, 디자인, 발전, 자원, 결과, 조정으로 구분하고, 각 단계애서 정부의 역할을 총 56가지로 구분하여 혁신을 주도하는 능동적인 정부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구분

내용

(A)

이미 잘하고 있는

가구와 공간 사용에 지속 가능한 시스템 구축,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가이드라인 수립, 지열을 활용한 극장 공간 냉난방, 태양열 패널 설치, 전시 가벽 재사용, 보이는 수장고 설립(청주, 횡성 ), 환경 프로젝트 전시 기획, 수어 해설&문화접근성 교육, 글로벌 교류를 위한 예술가 레지던시

(B)

가까운 미래에 실현할

탄소중립 가치를 반영한 미술관 운영 전략 변화, 적극적인 시민 참여를 통한 기후위기와 예술 관계 담론 확장, 한국 현대미술계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의 환경적 영향 논의, 예술가에게 의견을 묻고 함께 대안 찾기, 지속 가능한 창의적 전시 모델 개발, 관람객이 원하지 않는 아트숍 상품 조사, 운송 과정 최적화

(C)

장기적으로 고려할 사항

개인의 탄소배출권 기부,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하는 건축물 설계, 미술관 형태와 관람 방식 재정의, 미술관 규모·지리적 위치·기능 변화, 움직이는 미술관, 대중교통 접근성 강화

<미술관-탄소-프로젝트> 워크숍을 통해 도출한 미술관 탄소중립 아이디어의 일부(공개된 연구 자료에서 발췌)

 

‘시스템으로서의 정부 툴킷’에 매핑한 <미술관-탄소-프로젝트> 워크숍 아이디어들 ㅣ출처: 뉴디자인스튜디오

 

문제를 공유하고 참여를 이끌어 내기

<미술관-탄소-프로젝트>는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을 구하기 보다, 이해관계자들과 ‘탄소중립’이라는 과제를 함께 직면하고 대화하는 과정 자체에 의의가 큰 프로젝트다. 연구팀은 워크숍 참여자들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는 대신, 그들이 탄소중립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문제에 몰입할 수 있도록 각 대상에 맞게 디자인한 자료를 제공했다. 어린이를 위해서는 동화책을, 어른들에게는 가상의 신문을 제공한 것인데, 그 내용은 과학적 사실과 허구가 섞여 다소 극단적이지만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아 더욱 상상력을 자극한다. 예를 들면 딸기를 한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아이, 이상 기온으로 외출이 금지된 하루, 기온이 너무 높아서 실외에서 경기를 할 수 없게 된 올림픽, 마지막으로 남은 빙하가 사라진 북극해 등이다.

 

연구팀은 어린이 워크숍을 통해 얻은 통찰을 네 가지 시나리오로 재편집해 청소년과 성인 참여자들에게 다시 제공했다. ①탄소배출량이 정해진 한도에 도달하면 비자발적으로 문을 닫아야 하는 미술관, ②오직 시민이 선택한 전시만 열 수 있는 미술관, ③완전히 디지털화 된 미술관, ④100% 제로웨이스트 미술관 등 2061년의 국립현대미술관을 상상한 극단적인 전제는 참여자들이 더욱 비판적인 시각으로 논제를 해석하도록 이끌었다.

 

<미술관-탄소-프로젝트> 어린이 워크숍에 사용한 동화책 中ㅣ출처: 뉴디자인스튜디오

<미술관-탄소-프로젝트> 성인 워크숍에 사용한 ‘미래신문’ 中ㅣ출처: 뉴디자인스튜디오

 

<미술관-탄소-프로젝트> 성인 워크숍ㅣ출처: 뉴디자인스튜디오

 

한편 현재 진행 중인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예술 분야 기후대응 프로젝트는 특정 공간이 아닌, 전국에 흩어져 있는 여러 창제작자들을 위한 탄소중립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 중 하나다. 연구팀은 일방적인 미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환경에서 스스로 실천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대화의 물꼬를 트는 유연한 가이드라인으로서 ‘대화카드’를 제안했다.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 공연 예술계 창작자를 인터뷰한 내용 중 그들의 어려움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목소리와, 다른 창제작자들도 시도해 봄직한 제안을 추출하여 게임 형태로 만든 것이다.* 실천 방안 논의를 위해 모인 공연 감독, 무대 제작자, 의상 디자이너, 배우 등은 평소에 단발적으로 생각하고 건의했던 내용을 카드 게임을 통해 구조화하고 작은 실천 아이디어들을 현실적인 계획으로 구체화할 수 있었다.

* 핀란드와 런던의 서비스 디자인 전문회사 ‘헬론Hellon’이 개발한 ‘참여 게임Participation Game – 공공기관의 시민 참여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도록 유도하는 게임’에서 영감을 받았다.

 

공연예술계 이해관계자의 발언을 발췌하여 제작한 대화 도구 ‘목소리카드’의 일부ㅣ출처: 뉴디자인스튜디오

 

이후 연구팀은 2024년 가을부터 <2023년 국립과천과학관 시민참여형 탄소중립 과학관 정책·전략 발굴 (연구 기획: 박은지 연구사, 고준현 사무관)>의 결과물 중 하나인 '행동변화와 학습의 기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과천과학관'의 일부를 실험할 예정이다. 장기적인 쓰임새보다 일시적인 즐거움으로 무장해 구매를 유도하는 일부 기념품이야말로 탄소배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에 관람객의 행동에 변화를 주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기념품 매장’을 구현해 보는 것을 목표로, 수익성과 흥미 위주의 상품을 최소화하고 공간 본연의 전시·교육 주제에 맞는 상품을 큐레이션하고, 기념품 숍에 방문하는 것 또한 과학학습의 일환이 될 수 있게 구성할 계획이다.

 

공공정책이나 공공서비스 개발 과정에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중요한 이유는 정책을 연구하고 만들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현장을 이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속에 들어가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듣거나 그들을 창발적인 환경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한 워크숍의 결과는 행정 전문가나 연구자의 의견에 비해 거칠고 급진적이거나, 현실적으로 추진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와 관점을 발견하고, 시간이 지나서라도 결과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만드는 것은 결국 이들의 참여다. 따라서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과정을 디자인하는 일은 무엇보다 전략적이고 면밀해야 한다.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디자이너의 역할

디자인 분야는 계속 변화하고 또 확장되고 있다. 건축가가 짓는 건축물이 모두 다른 것처럼 디자이너도 개인의 소양과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한다. 공공서비스와 공공정책 분야에서 디자인은 최근 더욱 주목받는 추세다. 문제 해결 능력을 중시하는 디자인은 아주 예전부터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해 왔고, 인간을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책임이 있다. 탄소중립 뿐만 아니라 저출생, 고령화, 지방 소멸과 같이 전에 없던 사회 문제는 관습에 따르지 않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요구한다. 이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복잡한 문제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디자이너의 시각이 유용해진 것이다.

 

디자이너는 앞서 말한 프로젝트 사례들과 같이 창의적인 도구를 개발할 수 있고, 그 결과에 숨은 의미를 발견해 맥락을 만들 수 있다. 또한 그 과정에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같은 합리적 방법론을 융합해 전통적 방식을 유지해 온 정책 개발의 관점을 환기한다. 디자인을 통해 공공정책과 공공서비스를 개선하는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사람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곧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더 알아보기

International Journal of Design(2024.4.)

뉴디자인스튜디오X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탄소-프로젝트> 리뷰

 

 

인터뷰이 : 이승호(유니스트UNIST 디자인학과 조교수, 탄소중립원 겸임교수)

전략디자인 실무와 연구를 진행하며, 디자인을 통해 공공 서비스를 개선하고 정책을 디자인하는 연구소 ‘뉴디자인스튜디오’를 이끈다. 핀란드 알토대학교의 다학제 석사 과정인 Creative Sustainability에서 ‘정부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Government’ 수업을 시작했고, 2013년부터 북유럽 씽크탱크 ‘데모스 헬싱키Demos Helsinki’의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다. 2019년부터 '뉴디자인스튜디오'의 학생 및 연구원들과 함께 한국행정연구원, 완주군, bbb코리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과천과학관, 예술경영지원센터 등과 협력하며 크고 작은 지속가능성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https://www.newdesign.studio/

 

취재· : 공공디자인 소식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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