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작성일:
- 2022-06-29
- 작성자:
- 소식지관리자
- 조회수:
- 1265
[기획] 한국의 역사 문화 골목길 사례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20호(202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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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와 현대를 연결하는
역사 문화 골목
역사 문화 골목은 기존의 골목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오랜 역사와 시간 속에서 묻어나는 자취를 그대로 유지·보존해 골목에 스며든 과거의 역사와 삶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선조들의 업적과 정서를 회상하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 비록 관광지로서 상업화가 되더라도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보존이 될 수 있다.
근대 한옥의 시초가 자리한 곳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골목길을 걷다 나도 모르는 사이 길을 잃게 되는 곳, 시골 동네 어귀에 있을 법한 슈퍼와 오락실이 있는 곳, 레트로가 열풍이던 시기 인스타그램에 도배되듯 올라오던 동네. 그곳이 바로 서울 종로구 익선동이다. 익선동은 1920년대 청계천 이남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종로 진출을 본격화하자 당시 도시개발업자였던 정세권이 이 일대 토지를 사들여 서민을 위한 대규모 한옥단지를 지은 것이 지금 익선동 한옥마을의 시초다. 그는 저렴한 가격으로 한옥을 판매해 일본인으로부터 종로를 지키고자 했는데 이때 도시형 근대 한옥이 탄생했다. 전통 한옥은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그곳을 둘러싸는 형식의 건축물로 넓은 토지가 필요하지만 익선동의 한옥은 좁은 부지에 서민용 주택에 적합한 구조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가 공들여 지은 한옥들은 쇠락하고 주변 지역이 개발되면서 익선동 또한 재개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운명을 바꾼 것이 뉴트로 감성이라는 트렌드였다. 레트로 풍의 식당과 카페가 익선동 한옥마을에 문을 열며 사진을 찍기 위한 젊은이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서울시는 2014년 익선동 재개발 계획을 철회하고 2018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했다. 익선동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해 옛 모습을 지킬 수 있었던 데에는 사회적 기업 ‘익선다다’의 공이 크다. 익선다다는 1920년대 지어진 한옥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고 현대적인 가구로 채운 ‘익동다방’을 열며 익선동을 떠들석한 거리로 만들었다. 이후 거북이슈퍼, 열두달, 1920경양식, 엉클비디오타운 등 4년 남짓한 시간에 익선동에 브랜드 10개를 만들어 대박을 터트렸다. 하지만 가게를 열고 공간이 활성화되면 쫓겨나서 새로운 공간을 찾는 것을 반복하다 지금은 레스토랑 르블란서 하나만 남겨두고 모두 문을 닫았다. 익선다다의 손길이 닿은 이후 지금 익선동의 한옥은 리모델링된 다양한 모습으로 레스토랑, 카페, 놀이시설 등의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으며 다음 세대들에게 익선동의 역사와 거리를 전하고 있다.
익선동 거리의 첫 번째 공간이던 익동다방. 사진 출처: 익선다다 홈페이지 www.iksundada.kr
지금은 사라진 카페 겸 영화 감상 공간 엉클 비디오 타운. 사진 출처: 익선다다 홈페이지 www.iksundada.kr
익선동의 ‘만홧가게’는 만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전시를 통해 많은 기성, 신인 작가들을 소개했다. 사진 출처: 익선다다 홈페이지 www.iksundada.kr
역사와 문화, 사회 운동가들이 살던 동네 투어
대구광역시 중구 근대문화거리
대구 근대문화거리는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관광에서 소개하는 다섯 개의 코스 중 제2코스에 해당하는 동네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대구의 모습이 잘 보존된 골목으로 걸으며 살아 있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이 길은 대구시에서 국비공모사업으로 선정된 ‘근대문화공간 디자인개선사업’의 모본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근대문화골목은 1.64km로 비교적 짧은 거리지만 볼거리가 많아 다 둘러보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선교사 주택이 모여 있는 청라언덕을 시작으로 만세운동길, 계산성당, 제일교회, 민족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서상돈의 고택, 근대문화체험관인 계산예가,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약령시, 근대 건축물 등록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된 화교협회까지 대구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1902년 프와넬 신부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설계된 계산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우뚝 솟은 쌍탑이 특징인데, 고풍스러운 내부와 건축물의 아름다움 덕분에 유명 인사들의 결혼식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덕분에 풍부한 콘텐츠를 갖춘 브랜드가 된 근대문화거리는 2012년 ‘한국관광의 별’, 2013년 지역문화브랜드대상 수상, 2014년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을 비롯해 4회 연속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며 대구를 더욱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되게 하고 있다.
대구 계산성당의 과거와 현재 모습. 사진 출처: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www.jung.daegu.kr
대구 (구) 제일교회 과거와 현재 모습. 사진 출처: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www.jung.daegu.kr
청라언덕에 있는 선교사의 집. 사진 출처: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www.jung.daegu.kr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골목투어 지도. 사진 출처: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www.jung.daegu.kr
역사성과 동시대성의 접점지
인천 중구 개항장거리
1883년 개항 전에는 한적한 포구였다가 새로운 문명을 만나 근대도시로 발전한 인천은 140여 년 전에 세워진 국제 도시다. 당시 일본은 인천을 서울의 교두부로 삼아 도시계획을 진행하고자 이곳에 갖가지 신식 건축물을 세웠다. 일제의 침탈 야욕이 그대로 드러난 곳이 바로 개항장거리인 셈이다. 서구 문물이 들어오는 길목이자 일제 침탈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는 역사적 장소인 개항장거리에는 답동성당, 성공회 내동교회, 영국 성 누가병원, 일본 제1은행과 58은행, 대불호텔, 제물포 구락부, 인천세관, 인천우체국 등 근대건축자산이 풍부해 현재 그곳에서 수많은 문화예술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2009년 인천광역시와 인천문화재단, 시민들의 도움으로 문을 연 인천아트플랫폼이 이웃으로 들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끊이지 않는다. 1930~40년대에 만든 건축물을 리모델링해 창작스튜디오, 공방, 전시장 등 13개 동 규모로 조성된 인천아트플랫폼은 당시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 및 유지하며 담장을 없애고 길을 내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문화예술과 손쉽게 맞닿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입주 작가로 활동하며 동네에 활기가 더해진 최근에는 소규모 갤러리들이 잇달아 문을 열며 시민들이 예술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더 늘고 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중국의 관할 영역을 나누었던 당시 그 나라의 건축 양식이 그대로 개항장거리에 남게 됐다.
사진 출처: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개항장거리에 남아있는 인천 일본제일은행지점과 일본18은행 인천지점. 사진 출처: 인천개항장거리 홈페이지 www.incheonpenport.com
개항장거리에 남아 있는 답동성당과 일본58은행 인천지점. 사진 출처: 인천광역시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www.icjg.go.kr
당시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유지하며 리모델링한 인천아트플랫폼의 공간. 사진 출처: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 www.inartplatform.kr
지역 정체성 보존의 바로미터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약 200m 가량의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서점들이 빼곡히 마주하고 있는 곳. 바로 부산의 대표 명소 중 하나인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 부대에서 나오던 잡지를 팔던 것이 시초가 된 보수동 책방골목은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성행했으나 인터넷 시대의 도래와 대형서점의 등장으로 침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의 여파와 재개발로 문을 닫는 서점이 급증해 한때 80여 곳의 책방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30여 곳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가을 책방 세 곳이 들어선 건물이 철거되고 오피스텔이 지어질 것이라는 소식에 또 한 번 위기를 맞게 됐다. 이에 상인들과 문화 관계자는 보수동책방골목 활성화위원회를 발족하고 인근 고등학생도 손을 보태 다양한 홍보 활동으로 책방골목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이러한 시민들의 노력으로 최근 건설사는 철거 대신 리모델링으로 상생을 택했다. 현재 보수동 책방골목은 부산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상태다. 부산시가 그 보존가치를 인정하긴 했지만 보존과 관리를 위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 내용이 없어 선언 수준에 그친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보존 문제는 앞으로 재산권과 도시 공동체의 공공성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부산다움의 공간을 어떻게 지켜낼 것이냐는 선례로서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풍경. 사진 출처: 보수동 책방골목 보존과 미래 포럼SNS www.instagram.com/save_bosudong_bookstore_alley
보수동 책방골목에 위치한 계단과 서점들. 사진 출처: 보수동 책방골목 홈페이지 www.bosubook.com
글: 박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