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
작성일:
2021-08-30
작성자:
소식지관리자
조회수:
3273

[기획]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10호 (20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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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담겨있는 문자


2001년, 타이포그래피를 주제로 한 유일한 국제행사로 주목받은 타이포잔치는 2011년부터 국제 비엔날레로 정례화되어 문자가 가진 힘과 문화적 저력, 예술적 가치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교류하는 세계 유일의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로 자리 잡았다. 매회 색다른 기획과 연출로 당대의 대상이나 사회 이슈를 다양한 시각언어로 담아냈던 타이포잔치의 2021년도 주제는 ‘문자와 생명’이다.

생명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순환의 고리로서, 만물의 이치이자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타이포잔치 2021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 바람, 신념을 문자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생명과 문자를 연결시킨다. 그리고 문자의 영역을 글자에만 국한하지 않고 기호,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그림과 같은 시각언어로 확대한다.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 공식 포스터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 공식 포스터


타이포잔치 2021의 제목 《거북이와 두루미》는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로 시작하는 유행어에서 따온 것이다. 197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등장하여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수히 패러디되는 길고도 리드미컬한 이 이름은 건강과 장수에 대한 인간의 욕망, 자손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선대의 바람이 집합된 것이다. 장수를 뜻하는 십장생에 등장하는 동물은 물론이고,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인간(므두셀라)과 18만 년을 살았다는 중국의 인물(삼천갑자 동방삭) 등 긴 수명을 상징하는 존재를 모아서 지은 이 이름은 비록 코미디 유행어일지라도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인 생명과 문자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타이포잔치 2021의 메시지를 잘 전달한다.

타이포잔치는 사전행사와 본 행사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사이사이》라고 불리는 사전행사는 지난 2020년 12월과 2021년 5월, 워크숍과 토크로 진행되었다. 두 번의 사전행사를 통해 기획팀은 문자가 생명이라는 단어를 어디까지 확장해 줄 수 있는지를 스케치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준비한 본 행사는 다가오는 9월 14일부터 10월 17일까지, 문화역서울284에서 진행된다.

타이포잔치 2021의 이재민 예술감독은 동양 사상의 근간인 오행(五行)에서 모티브를 얻어 전시를 구성했다. 우주 만물의 변화를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순환으로 바라보는 오행은 생명과 연관되어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상징하는 4가지의 파트로 나타난다. 그리고 각 파트는 인간의 욕구가 형태를 얻은 순간과 흔적을 담은 10개의 챕터로 채워진다.

오행의 각 구성요소에 따른 전시 구성

오행의 각 구성요소에 따른 전시 구성


올해 5월, 《사이사이》 토크를 통해 비대면 온라인 토크의 가능성을 확인한 타이포잔치 기획팀은 타이포잔치 2021 전시와 함께 온라인 토크를 연계행사로 준비했다. 9월 25일, 10월 2일, 그리고 10월 9일(한글날) 세 번에 걸쳐 참여 작가와 큐레이터에게 전시 기획의도와 작업 뒷이야기를 들을 계획이다. 특히 한글날에는 네이버와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가 함께 개발 중인 글꼴 ‘마루부리’의 기획 의도와 디자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렇게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생명과 그를 바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다루는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는 그 어느 때보다 생명을 위협받은 상태에서도 다시 일어서고 극복하고자 했던 인간의 생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보여주는 행사가 될 것이다.



| 경계를 허물고 다채로운 해석이 가능한 문자

INTERVIEW

이재민 총감독

이재민 총감독 

이재민 총감독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의 주제는 ‘문자와 생명’이다. 이 주제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지난 타이포잔치의 주제들이 은연중에 시의성을 내포했듯이 이번 주제인 ‘생명’ 역시 지금 상황을 함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보도되는 암울한 팬데믹 시대에 ‘생명’이라는 주제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조심스러웠고 고민도 많았지만 최대한 무겁고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이와 함께 동물권, 페미니즘, 비거니즘 등 최근 대두되고 있는 다른 생명을 존중하려는 태도에도 주목했고요.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자는 사회 흐름처럼 타이포잔치 역시 경계의 틀을 허물고 다채로운 해석을 더하고자 했습니다.

동양 사상의 근원이 되는 ‘오행’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전시에 적용했는가?
우주 만물의 변화를 나무, 불, 흙, 쇠, 물의 다섯 가지 기운으로 압축해 설명하는 ‘오행’이 생명의 순환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명과 더불어 생겨나 전파되고 전달되며 문명의 쇠퇴와 함께 사라졌다가 다시 태어나는 문자의 과정 역시 오행의 흐름과 닮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나무는 호기심, 불은 열정, 물은 위트 등 오행의 속성을 전시 공간의 흐름에 적용해 균형감을 맞추고자 했습니다. 관람객이 전시를 보며 동양의 소우주 세계관을 체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번 타이포잔치의 전시 제목은 《거북이와 두루미》다. 유행어에서 따와 제목을 지은 과정이 궁금하다.
타이포그래피라고 하면 흔히 서구식 디자인론을 떠올리는데요, 이번 계기를 통해 동양적 사고와 방법론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고, 이러한 생각과 태도를 이름에서 단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대중적이면서 호기심이 생기는 제목을 찾던 중에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로 시작하는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이름을 자세히 살펴보니 생명과 관련된 동서양의 사상과 바람이 모두 담겨 있다는 걸 발견했고, 이번 타이포잔치와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 티저 사이트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 티저 사이트 (☞ 링크 연결)


전시를 앞두고 타이포잔치 2021의 티저 사이트가 공개되었다. 마우스 커서를 따라 제목이 움직이고 점점 길어지는 모션이 재미있다.
워크룸의 유현선 디자이너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작업한 이번 티저 사이트는 실험적이지만, 콘텐츠 자체에도 주목했습니다. 콘텐츠는 크게 행사의 기본적인 정보와 전시의 긴 제목으로 나눠집니다. 행사 기본 정보는 두 가지 서체 - 최정호 민부리(한글)과 노이에 하스 그로테스크(영문)의 기준선을 미세하게 조정했을 뿐, 눈에 띄는 기교 없이 놓여 있습니다. 이와 달리 전시 제목은 마우스 커서(혹은 손가락)를 움직이는 순간 등장해 계속 따라다니며 기본 정보의 정적인 글줄과 대비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곧 메인 웹사이트를 오픈할 예정인데, 아직 구체적인 모습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태도 면에서는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 티저 사이트. 마우스 커서(또는 손)을 따라 움직이는 제목이 눈에 띈다.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 티저 사이트. 마우스 커서(또는 손)을 따라 움직이는 제목이 눈에 띈다.


예술감독과 기획팀 외에 여러 전문가가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어떤 분들이 참여했는지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기획팀이 전시 전체 컨셉을 구성했지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전문성을 요하는 파트에는 각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들을 큐레이터로 초청하여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게 했습니다. 기획팀에는 나와 조효준(코우너스), 박이랑이 속해 있으며, 실천적인 디자인을 고민해 온 서울대학교 이장섭 교수와 좋은 내용과 멋진 장정의 다양한 책을 디자인하고 출간하는 6699프레스 이재영 대표, <아시아디바>, <서울바벨> 등의 전시를 기획했던 신은진 현대미술 큐레이터 그리고 공예에 대한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해 온 김그린, 차정욱이 큐레이터로 참여해 주었습니다.

지난 타이포잔치와 비교해서 새롭게 시도하는 것이 있다면?
새로운 변화라고 한다면 초대 작가의 수를 대거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타이포잔치가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언제까지 참여 작가의 수가 늘어날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해외 작가의 경우, 되도록이면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얼굴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타이포잔치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 중 하나는 대중성이다. 일반 관객들에게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준비한 부분이 있는가?
잘 도안된 타입만이 타이포그래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숨어 있는 의미와 글자를 찾는 것도 타이포그래피라고 생각합니다. 《사이사이》 포스터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제작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뼈, 근육, 장기가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일러스트레이션은 기본 뼈대에 살을 붙여 인상을 만들어내는 타이포그래피의 원리를 표현한 것입니다. 포스터에 일러스트레이션을 적극 활용한 이유는 비전공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타이포그래피보다 그림을 더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된 포스터를 보고 타이포잔치의 첫인상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사이사이》 공식 포스터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사이사이》 공식 포스터


>>>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사이사이》 리뷰 기사 보러가기



| 9가지 키워드로 살펴보는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
 

Studio Spass 스튜디오 스파스의 설치 작품 〈So Me Thing〉(2015).
이번 타이포잔치 2021에는 〈So Me Thing〉의 연작에 해당하는 〈Lifespan〉이 설치, 전시된다.©Studio Spass 스튜디오 스파스의 설치 작품 〈So Me Thing〉(2015).
이번 타이포잔치 2021에는 〈So Me Thing〉의 연작에 해당하는 〈Lifespan〉이 설치, 전시된다.


기도들
타이포잔치 2021의 파트 1은 인간의 원초적인 바람을 소재로 한다. 그 첫 번째 챕터인 ‘기도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인류가 기원을 담거나 길흉을 점쳐온 문자와 형상들을 다룬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은 한글, 한자, 알파벳 등 각국의 문자와 다양한 메타포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바람을 담은 작품을 전시한다.

홈 스위트 홈
파트 1의 두 번째 챕터인 ‘홈 스위트 홈’에서는 십장생이 그려진 이부자리,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일본의 마네키네코 등 바람을 담아 집 안에 두는 물건에서 영감 받은 설치 작품이 전시된다.

참 좋은 아침
가족 단체 대화방에서 주고받는 메시지 또는 덕담을 담은 인터넷 메시지에서 영감 받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구모아, 김영선, 김주경, 양장점 등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서체 디자이너와 사진작가들이 가족과 주변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살피며 만든 작품을 작업했다.

말하는 그림
파트 2 ‘기록과 선언’은 디자인과 문자, 사회를 연관 지어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권, 젠더, 비트코인, 부동산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일러스트레이션과 글로 표현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일러스트레이터들은 각자 관심있는 이슈를 연속되는 5장의 그림으로 표현했으며,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펴낸 ‘펜유니온’의 김하나, 황선우 작가는 그림에서 영감 받아 쓴 글을 전시한다.

흔적들
자연의 관점에서 문자는 인간의 흔적이다. 인간이 지구를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는 현시대를 ‘인류세’라고 한다면, 인간이 변화시킨 자연의 흔적은 인류세의 신생 문자다. 오랜 풍화와 외부 압력을 거쳐 본래의 형태와 용도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한 폐플라스틱을 모아서 진열하는 강하나 작가의 <뉴모픽락(Newmorphic rock)>은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 표본처럼 나열된 폐플라스틱은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파트 2의 챕터 2. 흔적들 ©장한나
장한나 작가의 〈뉴모픽락〉은 본래의 형태와 용도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한 폐플라스틱을 모아서 진열한 작품이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파트 2의 챕터 2. 흔적들 ©장한나
장한나 작가의 〈뉴모픽락〉은 본래의 형태와 용도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한 폐플라스틱을 모아서 진열한 작품이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명도서관
책의 생명이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북 디자인이 전통 문법을 답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동시에 디자이너는 북 디자인의 규칙에서 어긋난 새로운 역행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낯선 ‘변종’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생명도서관’은 2015년 이후 한국에서 출간된 책 중에서 전통적 문법과 규칙에서 이탈한 변종, 즉 경계에 놓은 북 디자인을 수집한다.

밈의 정원
누구나 쉽게 이미지를 만들고 상호 소통이 가능한 플랫폼이 존재하는 시대. 타이포잔치 2021은 동시대 미술작가들이 계시와 상상을 통해 이미지를 재전유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형식이나 수사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예술적 언어가 포스트인터넷 시대에 어떠한 방식으로 고유성을 획득해 가는지 살펴보는 동시에 밈(meme)의 정치학이 동시대 시각문화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고찰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람한 〈babo_F〉, 186x122cm, 디지털페인팅, 라이트패널, 2021

©람한 〈babo_F〉, 186x122cm, 디지털페인팅, 라이트패널, 2021


기호들
다섯 명의 공예가는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생명의 의미를 담은, 일종의 기호를 연상시키는 형상을 제작했다. 각각의 작품에는 생명의 의미를 대표할 수 있는 식물의 다섯가지 구성(씨앗, 뿌리, 줄기와 잎, 꽃, 열매)을 해석하여 순환과 연결, 바탕과 지탱, 균형과 매개, 화합과 발화, 내포와 결실의 의미가 담겨 있다.

존재와 지속
많은 상점과 기관이 문을 닫았고 국경은 차단되었다. 창작자들 간의 교류도 이전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며 상업적 활동이나 전시, 공연의 기회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일상과 주변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방법을 스스로 배워왔다. 전시장소인 문화역서울284의 중앙홀을 비롯한 주요 공간에는 다른 챕터에 속하지 않은 개별 작품들이 설치되는데, 스스로를 고양시키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지속해 온 작가들의 작품은 우리에게 ‘계속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동완 〈집에 머물러 주세요 ×900〉, Acrylic on canvas, 270x270cm, 2020

©국동완 〈집에 머물러 주세요 ×900〉, Acrylic on canvas, 270x270cm, 2020



| 디자인프레스
자료 제공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타이포잔치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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