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작성일:
- 2026-01-06
- 작성자:
- 박은영
- 조회수:
- 348
[기획] 도시의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62호(202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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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략이 된 문화 축제
문화 축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일회성 행사를 넘어, 도시의 이미지와 장소성을 근본적으로 재구축하는 공공디자인 전략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축제라는 플랫폼은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소통의 장인 동시에 지역 고유의 자산을 발견하고 주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실질적인 힘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의 문화적 자산과 도시의 맥락을 정교하게 결합한 축제는 도시 브랜딩을 완성하고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동력이 된다. 무형의 자산을 시각화해 지역의 정체성을 세우거나 대규모 국제 행사를 통해 도시의 체질을 개선하고, 멈춰버린 산업 유산과 소멸해 가는 소외 지역에 예술적 숨결을 불어넣는 등 축제를 마중물 삼아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의 경쟁력을 다시 세운 국내외 사례를 살펴본다.
지역의 자산, 도시의 얼굴이 되다
문화유산이나 특산물과 같은 지역의 고유한 자산은 도시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재료다. 무형의 가치나 전통 산업을 축제라는 문화 콘텐츠로 풀어내고, 이를 공공디자인의 언어로 재해석해 눈에 보이는 상징으로 치환한다. 나아가 단순한 축제 홍보를 넘어, 문화적 자산을 도시의 풍경과 인프라로 정착시키며 지역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나간다.
국악을 도시의 풍경으로 구현한 영동세계국악엑스포
난계 박연의 고향이자 국악의 고장으로 불려온 충북 영동은 고유한 문화 자산을 지역의 정체성으로 삼고 국제 행사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전략을 보여주었다. 2025 영동세계국악엑스포는 국악이라는 무형의 예술 콘텐츠를 국제적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축제를 열어 관광객을 불러 모았다. 이 엑스포는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제행사 개최도시 공공디자인 지원 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로 단순히 행사장을 꾸미는 것을 넘어 도시 전체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통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영동군은 국악주제관, 세계음악문화관 등 전시 공간을 개설하고 전통 악기 형태와 울림을 모티프로 한 공공 시설물과 안내 체계를 도시 곳곳에 설치했다. 특히 엑스포 기간 중 세계 30여 개국이 참여하는 해외 민속 공연과 국악기 제작 체험, 전통 예술 퍼레이드 등 오감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선보이며 100만 명 이상의 국내외 관람객을 유치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는 영동을 평범한 농촌 도시가 아닌 국제 문화 도시로 인식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번 행사가 단발성 축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사 과정에서 축적된 문화 자산이 영동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지속 가능한 미래 동력으로 안착하기를 기대해본다.

‘ㄱ’자 모양의 국악기 편경을 모티브로 국악의 맑고 청아한 울림이 퍼져 나가는 에너지를 형상화한 국악엑스포 상징 조형물. 금속 조각가 심병건이 제작한 이 작품은 영동복합문화예술회관 옆에 설치되었다. 사진 출처: 영동세계국악엑스포 홈페이지

국악의 선율을 시각화한 조형물로 도시적 상징성과 포토존의 장소성을 제공했다. 사진 출처: 영동군 국제행사 개최도시 공공디자인 지원 사업 보고서

휴식과 체험 기능을 갖춘 펀 디자인 옹벽을 조성해 보행자의 발걸음에 즐거움을 더했다. 사진 출처: 영동군 국제행사 개최도시 공공디자인 지원 사업 보고서
천년 도자의 숨결을 이어가는 여주도자기축제
지역의 전통 공예 자산인 도자기를 매개로 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한 여주도자기축제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여주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1989년에 시작됐다. 이 축제는 현재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연간 1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대형 행사로 성장하며 지역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5월 신륵사 관광지 일원에서 열리는 여주도자기축제는 온 가족이 도자의 매력을 체험할 수 있는 거대한 놀이의 장이 된다. 물레 체험과 장작 가마 불 지피기 시연 등 도자 제작의 원천 기술과 보존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교육적 가치는 물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참여형 콘텐츠를 대폭 강화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축제의 차별점은 도자기라는 특산물을 전시·판매하는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이를 도시의 경관 디자인 요소로 확장했다는 데 있다. 여주시는 축제장 주변은 물론 도시 곳곳의 공공 시설물과 안내 체계, 조형물 등에 도자의 특징을 반영했다. 축제 기간이 아닐 때에도 시민과 방문객이 일상 속에서 ‘도자 도시’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체감할 수 있도록 물리적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아울러 여주 도자기 공동 브랜드 ‘나날(Nanal)’을 필두로 현대적인 식기 문화를 제안하고, 청년 작가들의 실험적인 공예 작품 전시를 병행함으로써 도자가 오래된 산업이라는 편견을 깨고 있다. 이는 전통 자산을 현대적 콘텐츠로 재해석해 지역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은 공공 전략의 성공적인 선례로 평가할 수 있다.

남한강을 배경으로 여주 신륵사국민관광지 일원에서 펼쳐지는 여주도자기축제. 사진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주도자기축제의 인기 프로그램인 물레 체험 현장. 어린이와 성인이 참여 가능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사진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전자레인지로 간편하게 솥밥을 즐길 수 있는 나날 여주도자기의 ‘한끼솥밥’. 1인 밥상에 최적화된 용량과 현대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사진 출처: 나날

2024년에 여주시가 개발 완료한 공공디자인 표준디자인 중 특화형 승강장. 여주 도자기가 지닌 유려한 선을 공공시설물에 적용했다. 사진 출처: 여주시

여주도자기를 모티프로 한 여주시 전용 서체. 공공 건축물, 포스터, SNS 등 다양한 매체에 활용해 도시 경관의 일관성을 강화했다. 사진 출처: 여주시
국제적 규모의 행사를 통해 도시를 개혁하다
대규모 국제 행사는 도시의 시스템과 경관을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강력한 촉매제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단순히 시설물을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가 직면한 기능적 문제를 점검하며 미래 비전을 실제 공간에 구현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이러한 계기를 통해 노후한 기반 시설을 현대화하고, 보행 환경의 개선이나 첨단 기술의 접목과 같은 정교한 해법을 적용해 도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첨단 기술로 재건한 경북 구미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경북 구미시는 ‘2025 구미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을 계기로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제행사 개최도시 공공디자인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도시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자 했다. 한국의 대표 산업 도시인 구미는 이번 대회를 통해 노후한 공업 도시 이미지를 벗고 첨단 ICT 기술과 스포츠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스마트 디자인 도시’로의 도약을 시도했다. 핵심은 대회장인 구미시민운동장과 인근 보행 환경의 전면적인 개편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 장애인과 외국인 관람객 모두가 제약 없이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주요 거점에는 구미의 첨단 산업을 상징하는 미디어 아트 조형물과 미디어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스마트 쉼터를 설치해 도시 경관과 시민들의 이용 편의성, 즐길 거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구미시는 이번 지원 사업을 바탕으로 도시 전역의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정비해 나갈 계획이다.

구미를 상징하는 도시 컬러 4색을 활용해 경기장의 메인 게이트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사진 출처: 구미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국제행사 개최도시 공공디자인 지원 사업 보고서

사용자 경험 조사를 기반으로 설계한 웨이파인딩 디자인. 주경기장의 구역별 조닝 계획에 따라 공간을 구분하고, 컬러 시스템을 적용해 이용자가 원하는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출처: 구미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국제행사 개최도시 공공디자인 지원 사업 보고서

(왼쪽)구미IC 진출입로에 구미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 요소로서 미디어 포켓공원을 조성했다. (오른쪽) 구미시민운동장 주변 완충녹지를 활용해 미디어를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마련해 시민이 스스로 다양한 용도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출처: 구미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국제행사 개최도시 공공디자인 지원 사업 보고서

국제스포츠 행사에 부합하는 다이내믹한 라인의 형태를 상징화·조형화해 회전교차로에 배치했다. 무거운 하중을 견딜 수 없는 회전교차로의 장소적 특성을 고려해, 육상경기의 역동적 형태를 라인 드로잉으로 표현해 주변 배경과 조화로운 실루엣을 연출하고 교차로 하중을 분산했다. 사진 출처: 구미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국제행사 개최도시 공공디자인 지원 사업 보고서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오늘날 도시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를 디자인으로 해결하고 그 가능성을 현장으로 증명하는 플랫폼이다. 2017년 서울시가 ‘도시’와 ‘건축’을 화두로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소통하기 위해 창설한 이 행사는 매회 50여 개국, 100여 개 도시, 150여 개의 기관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도시 건축 축제로 자리잡았다.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포함한 글로벌 거장들이 참여해 제안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서울의 도시 구조를 바꾸는 정책적 동력이 된다. 이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서울의 유휴 공간이나 닫혀있던 장소를 실험장으로 삼아 공공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오랫동안 담장에 둘러싸여 있던 ‘열린송현녹지광장(송현동 부지)’이다. 이곳은 2023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당시 주제관이었던 하늘소 파빌리온 등을 통해 대중에게 전면 개방되었고 이는 ‘시민 정원’이라는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제안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국제적 담론을 실제 도시 계획에 이식하며 서울의 지도를 시민 친화적으로 다시 그려나가고 있다.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펼쳐진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행사 전경과 서울도시건축관에서 열린 <도시의 얼굴: 사람에게는 인간적인 건축이 필요하다> 전시 현장. 사진 출처: 서울시

202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제전 ‘일상의 벽’ 일부 이미지. 사진 출처: ⓒ최용준 / 서울시
멈춰 버린 산업 유산을 활용한 예술 축제
과거 경제 성장의 동력이었으나 이제는 가동을 멈춘 산업 유산은 예술 축제를 만나 도시의 새로운 심장으로 다시 태어난다. 일회성 행사를 치르는 데 그치지 않고, 축제를 통해 유입된 예술과 디자인을 도시의 영구적인 자산으로 남겨 슬럼화된 지역이나 방치된 유휴 공간을 재생하는 것이 핵심이다. 축제를 계기로 공간의 용도를 재정의하고,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며 지속 가능한 활력을 불어넣는 방식이다.
쇠락한 항만을 예술의 거점으로 삼은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
영국의 리버풀 비엔날레는 한때 대영제국의 번영을 상징했으나 산업 구조의 변화로 황폐해진 항만 도시 리버풀을 예술과 디자인을 통해 재건한 성공적인 프로젝트다. 1998년 시작된 이 비엔날레는 영국 최대의 미술 축제로 단순히 전시장에 작품을 나열하는 행사에 그치지 않고 버려진 항만 창고, 옛 양조장, 낡은 공공 건물 등 도시 곳곳에 방치된 산업 유산들을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활용하며 도시의 경관을 다시 설계했다. 특히 리버풀 항만 일대의 붉은 벽돌 창고들은 이 비엔날레를 계기로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과 같은 수준 높은 미술관과 복합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쇠락했던 항구 도시는 이제 비엔날레를 통해 매회 전 세계 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유럽의 대표 문화 관광지가 되었다. 무려 14주간 진행되는 리버풀 비엔날레는 2025년 6월 7일부터 9월 14일까지 열렸으며, 다음 행사는 2027년에 진행될 예정이다.

리버풀 비엔날레의 거점으로 활용 중인 테이트 리버풀. 1980년대 리버풀 항만 재생 계획의 일환으로 알버트 독(Albert Dock)의 폐창고를 예술 공간으로 개조했다. 사진 출처: tate.org.uk

2025 리버풀 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차이나타운 인근 그린빌 스트리트 사우스(Grenville Street South) 외벽에 설치된 장치중(ChihChung Chang) 작가의 벽화 ‘키스톤(Keystone)’. 리버풀-상하이 자매결연 25주년을 기념해 선물 받은 임페리얼 아치 형상을 반영했다. 사진 출처: ⓒRob Battersby / Liverpool Biennial
도시 재생을 성공시킨 프랑스 리옹 비엔날레
프랑스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 축제인 리옹 비엔날레(Biennale de Lyon)는 고정된 미술관을 넘어 움직이는 도시를 지향하는 차별화된 도시 재생 모델을 보여준다. 비영리 문화 기관인 ‘라 비엔날 드 리옹(La Biennale de Lyon)’ 협회의 기획 아래 리옹과 오베르뉴-론-알프스(Auvergne Rhône-Alpes) 지방 전역을 하나의 거대한 예술 플랫폼으로 활용하며 방문객들에게 도시의 숨겨진 공간을 새롭게 소개한다. 이들의 전략은 버려진 산업 유산을 활용하되 도시 문화 정책과 맞물려 해당 지역 전체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설탕 창고였던 ‘라 쉬크리에르(La Sucrière)다. 리옹 중심가에서 벗어난 외곽 공장 지대에 위치한 이 산업 유산은 1930년대 지어진 건물로 철거 위기에 놓여있다가 2011년 전면 리모델링된 후 리옹 비엔날레의 주 무대가 되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상징적 건축물로 부활했다. 라 쉬크리에르가 성공적인 지역 아트센터로 안착하자 리옹 비엔날레는 또 다른 버려진 공간을 찾아 무대를 옮겨가며 새로운 도시 재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기존의 폐공장을 재사용하고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는 리옹 비엔날레의 행보는 실험적 예술과 도시 개발이 결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시너지를 보여준다.

1930년대 지어진 설탕 공장을 개조해 리옹 비엔날레의 핵심 전시장으로 활용된 복합문화공간 ‘라 쉬크리에르’. 산업 유산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현대적인 디자인과 쓰임새를 더해 쇠락했던 리옹 항만 지역을 예술 거점으로 재탄생시켰다. 사진 출처: ⓒIngrid Moya / Lyon Events

1846년 철도 공장으로 건립되었다가 20세기에는 프랑스국영철도(SNCF) 열차 유지 보수센터로 사용되었던 산업 시설을 재생한 문화 공간 ‘레 그랑드 로코(Les Grandes Locos). 2024년 9월 개최되었던 제17회 리옹 비엔날레의 주 전시장으로 활용되면서 예술을 통해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는 거점으로 거듭났다. 사진 출처: labiennaledelyon.com
폐공장을 문화 거점으로 활용한 청주공예비엔날레
1999년 출범한 청주공예비엔날레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 공예가들의 예술적 성취를 공유하는 국제적 허브로 성장해 왔다. 특히 1946년 청주연초공장으로 출발해 2004년 폐지된 옛 연초제조창 건물을 2011년부터 전시장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며, 산업 유산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은 도시 재생의 모범 사례로 주목받았다.
이를 계기로 시설과 안내 체계, 휴게 환경을 전반적으로 개선해 방문객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고자 2022년 ‘국제행사 개최도시 공공디자인 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이후 보행과 휴식, 놀이 등 다양한 활동을 수용하고 문화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시설을 보완하며, 녹지 광장을 중심으로 공예와 미술의 문화 거점에 걸맞은 경관을 조성했다.
이러한 시도는 청주시가 2025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공예 및 민속 예술’ 분야에 정회원으로 가입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됐다. 청주공예비엔날레를 통해 축적된 자산은 ‘문화제조창’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시민들의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고 있다. 시민들에게는 생활 밀착형 문화 향유의 장을 제공하고, 지역 작가들에게는 글로벌 무대로 도약할 수 있는 창작과 교류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
과거 3000여 명의 노동자가 연간 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하던 산업 현장은 공예 문화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과 청주시한국공예관, 도서관 등이 어우러진 이 복합 문화 단지는 창작과 전시, 교육이 공존하는 청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멈춰 버린 공장 부지가 문화 축제를 통해 도시의 활기찬 심장부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청주는 낡은 제조업 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글로벌 공예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져 가고 있다.

미디어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높이 4m 규모의 상징적 조형물을 입구의 잔디 공원에 설치해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했으며,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사진 출처: 청주공예비엔날레 국제행사 개최도시 공공디자인 지원 사업 보고서

건축물 외벽부의 명칭 사인은 다양한 이용객이 방문하는 대상지의 특성을 고려해 유니버설 디자인 관점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디자인 체계를 도입했다. 사진 출처: 청주공예비엔날레 국제행사 개최도시 공공디자인 지원 사업 보고서
지역 소멸의 위기를 탈피시킨 문화 축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소멸 위기를 맞은 지역에서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문화 축제를 도입해 방문객을 유입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모색한다. 예술을 매개로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으고 흩어진 공동체를 묶어내면서 죽어가던 공간을 생동하는 삶의 터전으로 부활시킨다.
대지를 예술로 삼아 마을을 되살린 일본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
2000년 첫 발을 내디딘 일본 니카타현의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대지의 예술제)는 소멸 위기 지역을 되살린 지역 재생형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전형적인 낙후 농촌이었던 이곳은 고령화와 이촌향도로 인해 마을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으나 마을 전체를 거대한 노천 미술관으로 재편하며 반전을 꾀했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는 거창한 건축물을 새로 짓는 대신 마을에 남겨진 폐교와 폐가 등 낡은 유휴 시설을 예술의 힘으로 부활시킨 점에 있다. 축제의 핵심은 ‘협력’이다. 예술가들은 마을에 머물며 주민들과 소통하고 지역의 역사와 자연, 주민들의 일상이 담긴 이야기를 디자인 재료로 삼는다. 노인들만 남았던 마을에 젊은 예술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상주하며 주민들과 소통하자 소외되었던 노인들은 스스로 작품 가이드가 되거나 식당을 운영하며 축제의 일원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난 25년간의 실험을 통해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는 예술 축제가 단절된 공동체를 잇고 주민의 삶에 실질적 활기를 불어넣는 강력한 생존 전략임을 입증했다. 축제 기간 외에도 영구 설치된 수백 점의 작품은 매년 수십만 명의 방문객을 오지로 불러모으는 영구적인 관광 자산이 되었으며 이는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주민들에게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되찾아주었다.

에치고츠마리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원형 지붕의 창고를 캔버스로 활용해 익살스러운 표정을 그려 넣은 ‘가마보코 페이스(Kamaboko Face)’. 사진 출처: ⓒT.Kuratan / www.echigo-tsumari.jpi

강변을 따라 늘어선 18개의 전신주에 ‘강의 기억’을 주제로 한 시구를 새겨 넣은 ‘더 롱기스트 리버(The Longest River)’. 이 강과 함께 살아온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공모한 결과물로 지역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예술 작품에 담아냈다. 사진 출처: ⓒIshizuka Gentaro / www.echigo-tsumari.jpi

교차로에 설치된 대형 이정표 작품인 스텝 인 플랜(Step in Plan)은 네덜란드 건축가 존 쾨르멜링(John Körmeling)이 구조 설계를 맡고, 일본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아사바 카츠미(Asaba Katsumi)가 폰트 디자인을 담당했다. 사진 출처: ⓒNakamura Osamu / www.echigo-tsumari.jpi
수상 무대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
오스트리아와 독일, 스위스 세 나라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인구 3만 명 규모의 작은 도시 브레겐츠(Bregenz)는 뚜렷한 주력 산업이 없어 쇠퇴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이 도시는 보덴 호수(Bodensee)를 배경으로 호수 위에 거대한 수상 무대인 ‘제뷔네(Seebühne)’를 설치하는 파격적인 디자인 전략을 선택했다.
2년마다 새롭게 설계되는 이 수상 무대는 단순한 공연용 세트에 머물지 않는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무대 예술가들이 참여해 완성하는 거대한 공공 설치 미술이자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압도적인 규모와 예술성을 갖춘 무대 디자인은 전 세계의 시선을 끌었고, 축제 기간에만 2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들이며 지역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이 수상 무대를 중심으로 수변 산책로와 공연장, 숙박 시설 등 도시 전반의 공공 인프라를 예술적 감각으로 정비해 나갔다. 그 결과 작은 국경 도시는 전 세계인에게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문화 휴양지로 탈바꿈했다. 자연환경과 결합한 공공 설치물이 예술 축제와 만나 지역 소멸의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2024년과 2025년 두 해 여름 축제 기간 동안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오페라 ‘마탄의 사수’ 무대. 많은 비용이 들어 한 번 무대를 설치하면 2년간 같은 작품을 공연한다. 사진 출처: ⓒAnja Koehler / Bregenzer Festspiele
2026년 디자인 축제 캘린더
지역과 긴밀하게 호흡하며 도시 전역을 하나의 디자인 무대로 확장해 온 전 세계 주요 행사를 정리했다.

글: 공공디자인 소식지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