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문화적 다양성이 존중받는 다문화 사회를 향해
작성일:
2025-06-05
작성자:
박은영
조회수:
6003

[기획] 다문화 수용과 협업 방법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55호(202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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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다양성이 존중받는 다문화 사회를 향해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265만783명을 기록했다. 2019년보다 12만6127명이 늘어난 것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외국인 주민 비율이 5.17%에 해당하는 수치다. 100명 중 4명이 외국인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셈이다.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다문화 정책은 이주민 가족의 생존과 정착을 지원하는 복지 중심의 접근이었으나 최근에는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되는 중이다. 단순히 이주민을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인종, 민족, 언어 등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과 공존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문화적 위상의 변화와도 맞물린다. K-팝, K-드라마 등 한국 문화에 매료돼 자발적으로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이 증가하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우리 이웃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이들과의 공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해졌다. 지역 현장에서도 ‘다문화’라는 키워드는 사회 복지나 이주민 지원을 넘어 도시와 마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화 자산으로 활용된다. 다문화를 도시와 마을의 미래를 재설계할 수 있는 문화적 동력으로 받아들이거나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할 실마리로 삼고 지역 브랜드의 새로운 핵심으로 삼는 시도도 나타난다. 다문화가 어떻게 도시와 마을의 일상을 변화시키는지, 다양성 포용을 위한 지자체의 노력은 무엇이 있는지, 또한 국내에 적용할 수 있는 해외 사례는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상호 문화를 바탕으로, 국제도시로 발돋움하는 안산시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기존의 다문화 정책을 넘어 ‘상호문화(Intercultural)’* 관점을 바탕에 둔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경기 안산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다문화 도시로 2020년 유럽평의회로부터 아시아 최초 상호문화도시로 지정되며 가장 활발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안산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주민이 거주하는 도시다. 2025년 3월 기준 118개국에서 온 외국인 10만580명이 정착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안산시가 다문화 정책을 넘어 ‘상호문화도시’로 정체성을 정립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올해로 상호문화도시 지정 5년차를 맞은 안산시는 2022년부터 중장기 5개년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정책적 기반과 실행 시스템을 하나씩 다져왔다. 외국인주민협의회 운영, 다문화특구 조성, 상호문화도시 조례 제정 등을 통해 제도 기반을 강화하고 문화 간 교류가 일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행정과 공공 시설을 연계하고 있다.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일대에 조성된 ‘다문화마을특구’는 등록 외국인 및 외국국적동포가 마을 전체 인구의 89.2%(2024년 6월 말 기준)로 국내 최대 외국인 밀집 거주 지역이다. 이 곳은 2009년 지식경제부 지역특화사업으로 지정된 이후 안산시의 상징적 장소로 자리잡아왔다. 2023년에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지역특성 살리기 시책사업’에 선정되어 다문화마을특구 로컬디자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안산시와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가 함께 참여한 ‘공공디자인실험실’이 계기가 되어 기획된 것으로, 지역 특성을 활용한 로컬디자인을 개발해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상권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상호문화: 단일 문화로 흡수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나란히 존재하며 상호 이해와 교류를 촉진하는 방식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있는 외국인주민지원본부에는 내외국인의 건강 관리를 담당하는 단원보건소 원곡보건지소, 

세계문화체험관, 다문화마을특구 미디어센터, 다문화작은도서관 등이 있다. 사진 출처: 안산시 외국인주민지원본부


이색적인 식재료와 인도, 태국, 베트남,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안산시 다문화음식거리의 밤 풍경. 

일정 기간에는 ‘다문화거리 미식투어’가 진행되는 등 안산시 대표 관광명소로 각광받는 곳이다. 사진 출처: 안산시 외국인주민지원본부


안산시 외국인주민지원본부가 다문화마을특구 로컬디자인 사업 추진을 기념하며 올해 12월까지 진행하고 있는 세계문화체험관 방문 연계 이벤트. 

체험관에서 제공하는 전통 의상을 입고 포토존에서 사진 촬영 후 SNS에 인증 사진을 게시하면 소정의 기념품을 전달한다. 사진 출처: 안산시청



다양성 포용을 위한 문화 행사, 프로젝트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사례

다문화를 위한 공공시설과 공익사업은 이주민의 안정적인 정착뿐 아니라 문화 교류와 공동체 형성이 이루어지는 일상의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상호문화 교육, 지역 축제, 각종 다문화 공공서비스를 시행하면서 이주민과 토착민 간의 이해를 도모하고 국제사회에 걸맞는 시민의식으로 한단계 성장하도록 돕는다. 아직 국내에서는 다문화 관련 공공디자인 사례가 눈에 띄는 건 아니다. 이에 해외 사례를 함께 살펴보며 향후 우리나라에 적용하고 실천해 볼만한 점을 살펴본다.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와 다문화동행정원

2025년 10월에 열리는 ‘2025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정원이 도시를 바꾼다’는 주제 아래 펼쳐진다. 이번 박람회는 단순한 조경 공간이 아닌 도시 회복력과 공동체 가치를 회복하는 공간으로 바라보고자 기획되었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서 선보이게 될 여러 정원 중 ‘동행정원(Companion Garden)’은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특별한 프로젝트다. 공동체, 문화, 환경, 치유, 돌봄 등 사회적 가치를 담은 다양한 참여형 정원을 만날 수 있다. ‘다문화동행정원’도 이 일환으로 조성된다. 서울에 거주하는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시민들이 함께 정원을 설계하고 만들 수 있도록 기획됐다. 박람회 기간에는 시민을 위한 다양한 워크숍과 문화 교류 프로그램이 마련될 계획이다. 다문화 가족을 위한 ‘정원동행투어’가 별도로 진행되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이 함께 정원을 탐방하며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25 다문화동행정원 조성 현장 모습.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과 함께 구성한 팀을 모집해 보라매공원 내 어린이놀이터 옆 

녹지대에 정원 조성을 위한 식목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 출처: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다문화 수용성 지수 향상을 위한 대전 동구의 국민디자인단

대전시 동구는 다문화 가족과 지역 주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지역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민디자인단’을 발족했다. 서비스 디자이너를 포함한 분야별 전문가와 구민으로 구성된 국민디자인단은 공공 서비스를 함께 개발, 발전 시키는 국민 참여 정책이다. 동구는 지역 내 다문화 가정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국민디자인단과 함께 다문화 가족과 이주민들의 지역 사회 통합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다문화 수용성 지수*’를 높일 계획이다.

*다문화 수용성 지수: 차별, 거부 정서 등 다문화 수용도를 8개 요소로 측정해 산출하는 종합 지수로 어린 시절부터 접하는 다문화 체험이 중요하게 평가된다. 


-어린이를 위한 다문화 창의 교육 박물관, 영 V&A

영국 런던에 있는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 산하의 어린이 박물관 영 V&A(Young V&A)는 다문화 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교육과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유럽 등 다양한 문화권의 시각 자료와 이야기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소개하는 전시를 선보이며 관련 워크숍을 통해 체험 교육도 펼친다. 난민 어린이, 비영어권 아동, 문화적 소수자 그룹의 이야기를 반영한 전시물을 기획하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어린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을 강조하는 박물관인 만큼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아동과 가족을 위한 다국어 자료와 번역 서비스, 쉬운 언어 안내서도 마련해 놓았다.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대를 길러내고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감각을 향상 수 있는 실험적 교육 공간 사례로 주목해볼 만하다. 


런던 베스널그린(Bethnal Green)에 있는 영 V&A 건물 외관과 원형 계단이 눈길을 사로잡는 실내 공간. 

사진: ©Luke Hayes / courtesy of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사진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영 V&A 팀, 사진 작가 레한 자밀, 비영리 청소년 및 지역 사회 단체 마일 앤드 커뮤니티 프로젝트(Mile End Community Project)의 

청소년들과 함께 공동 기획하는 모습. 사진: ©Rehan Jamil / Courtesy of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2025년 2월 15일부터 11월 2일까지 영 V&A에서 열리는 ‘인사이드 메이킹 이집트(Inside Making Egypt)‘ 전시. 

아이들이 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예술을 체험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참여형 전시로 꾸려졌다. 

사진: ©David Parry / courtesy of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단절된 예술 문화의 맥을 잇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공간, 더 공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인근의 캄퐁츠낭(Kampong Chhnang) 주에 있는 문화 예술 공간 ‘더 공(The Gong)’은 비영리 단체 스마일링 게코(Smiling Gecko)와 스위스 디자인 스튜디오 아틀리에 오이(Atelier oï)가 협력해 조성한 공간이다. 캄보디아 지역 장인들과 함께 지은 원형 건축물은 지역 전통 악기인 공(Gong)에서 영감을 얻고 설계했으며 내부에는 100석 규모의 강당과 무대, 음향 전문 스튜디오, 카페 공간 등을 마련했다. 전통과 현대, 신구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는 이 곳은 특히 공산주의 정권 시기 단절된 캄보디아 전통 공연 예술의 복원을 목표로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이 자기 목소리와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역의 환경과 역사, 문화를 이어나가고 음악을 통해 여러 사람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징과 흡사한 캄보디아 전통 악기인 ‘공’에서 모티프를 얻어 설계한 ‘더 공. 악기의 공명으로 여러 사람들을 한데 모은다는 의미를 담아 

소리의 파동을 건축적 형상으로 구현했다. 사진 출처: www.atelier-oi.ch


현지에서 조달한 점토 벽돌로 장식적인 벽을 만들었다. 재료와 형식은 통일감을 유지하되 실내의 음향 스튜디오는 흡읍과 공명을 고려해 마감하고 

외부는 자연 환기와 개방성에 초점을 두었다. 사진 출처: www.atelier-oi.ch


-지역성과 문화 다양성을 품은 공공 공간, 나우 헌터스 포인트

미국 샌프란시스코 남동쪽 베이뷰-헌터스포인트(Bayview–Hunters Point)에 있는 ‘나우 헌터스 포인트(NOW Hunters Point)’는 과거 PG&E 화력발전소가 자리하던 산업 시설 부지를 지역 사회를 위한 열린 문화 플랫폼으로 전환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다. 이 공간은 미국 건축가이자 도시 디자이너인 리즈 오그부(Liz Ogbu)가 이끄는 스튜디오 오(Studio O)가 지역 단체, 주민과 협력해 만든 결과물로 지역 역사와 정체성, 공동체의 서사를 반영한 실험적 재생 모델로 주목받았다. 프로그램 기획과 공간 구성에 지역 청소년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했으며 야외 영화 상영, 지역 예술가의 공연, 농산물 직거래 장터 등의 행사를 열었다. 일상 활동을 문화 예술과 연결시키고 지역 공동체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나무 헌터스 포인트 부지 전경. 과거 산업 시설이 있었던 장소를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공공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도시의 새로운 문화 기반 시설로 재구성했다. 

사진: ©Tom Fitzgerald, lizogbu.com


지역 예술 단체와 함께 기획한 커뮤니티 행사. 서커스 페스티벌, 야외 영화 상영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은 다국적 출신의 주민들을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들고 

공동체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주었다. 사진: ©Anne Hamersky, lizogbu.com


-브리즈번의 다국어 도보 안내 시스템

호주의 브리즈번 시의회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시민과 방문객을 위한 다국어 도보 안내 시스템을 도입해 도시 내 길찾기 환경을 개선했다.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스튜디오 닷대시(Dotdash)가 고안한 새로운 다국어 표지판은 영어를 기본으로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번체, 아랍어 총 다섯 개 언어로 정보를 제공한다. 이는 브리즈번 시에서 발표한 ‘포용적 브리즈번 플랜(Inclusive Brisbane Plan 2019-2029)’의 일환으로, 브리즈번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국제 관광객과 유학생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친화적인 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이다. 브리즈번 시의 다국어 도보 안내 시스템은 공공 공간에서의 언어 장벽을 줄이고 여러 사람들이 도시 공간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브리즈번의 다국어 표지판은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노란색으로 도시 환경과의 대비를 이루고 보행자의 시선을 끈다. 

사진: ©Larraine Henning Reuben Ross, betterfutureawards.com


글: 공공디자인 소식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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